농협에 맡긴 50억원…타인이 인출? 황당 사기 사건의 내막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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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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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임대업체가 경북 구미의 한 농협에 맡긴 50억원이 하루 만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은 돈을 빼내 간 윤모(44)씨와 은행지점장이 공모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지난 2월 한 업체가 예탁한 50억원 #돈 맡긴 당일 다른 사람이 빼가 #업체, 해당 농협 지점장 고소 #농협 "업체 행동, 이해불가"

지난 2월 21일 오전 경북 구미시 산동농협(단위농협) 장천지점.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A업체 직원 2명이 김모(54) 지점장을 찾아왔다. 이들은 "경기도에 호텔을 짓기 위해 외국기업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지급보증서가 필요하다"며 "50억원을 맡길 테니 지급보증서를 써 달라"고 했다. 지점장 김씨는 지급보증서를 써 주면서 60일 뒤를 만기일로 설정해 돈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A업체는 21일, 23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20억원과 30억원을 예탁했다.

60일 뒤 돈을 찾으러 온 A업체는 지점장으로부터 "돈이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지점장의 말에 3일 정도 기다렸음에도 돈을 지급하지 않자 A업체 대표는 지점장 김씨와 감사 등 2명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에 보관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경북경찰청. [연합뉴스]

경북경찰청. [연합뉴스]

구미경찰서는 지난달 30일 돈을 빼내간 윤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사기 등)으로 구속했다. 지점장과 감사 등 2명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윤씨는 백화점 상품권 유통을 통해 수수료를 챙기는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A업체가 지난 2월 지급보증서를 써줄 은행기관을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농협에 따르면 지급보증서는 담보는 없지만 업체의 신용도를 보고 은행 대출을 보장해주는 보증서다. 여신금융법에따라 제1금융권인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주면 이를 들고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농협은 제2금융권으로 지급보증서 발급이 불가능하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알고 지내던 지점장 김씨에게 접근해 A업체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지급보증서를 임의로 써주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50억원을 업체에서 받아 내 사업에 투자하면 수수료 명목으로 10%의 돈을 주겠다"고도 했다. 최근 지점 상황이 좋지 않아 실적 압박을 받던 김씨는 컴퓨터로 지급보증서 양식을 만들었다. 김씨는 "투자 수익을 얻으려 했다. 만기일이 지나면 50억원을 다시 돌려주려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씨는 A업체가 50억원을 모두 맡긴 당일 윤씨에게 돈을 넘겼다.

하지만 두 달뒤 만기일에 A업체가 50억원을 요구했을 때 윤씨가 "이미 다 써버려서 없다"고 돈을 주지 않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김덕환 경북경찰청 수사2계장은 "지점장의 경우 돈을 다시 돌려주려고 했다고 진술해 사기, 공범까지는 아니고 업무상 횡령 혐의로 보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윤씨는 50억원 대부분 썼다고 경찰에 진술했으나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돈. [일러스트=강일구]

돈. [일러스트=강일구]

50억원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A업체와  농협 간의 갈등의 불씨가 남았다. 농협 측에서는 "개인 업체가 농협에 지급보증서 발행을 요청할 수가 없어 (업체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입장이다.

농협 경북지사 농촌지원팀 관계자는 "지점장 개인이 따로 양식을 만들어서 써준 것"이라며 "A업체의 경우에도 만약에 투자를 위해 상대 업체에게 잔액 확인을 시켜줘야 했다면 잔액증빙서를 뽑았어도 된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에 따르면 A업체는 투자받으려던 해외업체에서 지급보증서를 요구했으나 신용보증기금 등에 지급보증서를 요청할 형편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은행에서 발행 가능한 잔액증빙서가 있지만 언제든 잔액을 빼고 넣을 수 있기에 해외 업체에서는 지급보증서만 요구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김 수사2계장은 "50억원이 다시 지점장의 계좌로 들어갔는지 윤씨의 자금흐름을 파악해봐야 공범의 여부 등 정확한 수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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