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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미스터리' 무덤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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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납치.살해 미스터리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상렬(77.사진)씨가 3일 폐렴으로 숨졌다. 유족은 5일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을 마쳤다. 1979년 10월 파리에서 김씨가 살해당할 당시 이씨는 주 프랑스 대사관 공사(중정 파견)였다.

이씨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의 세 차례 면담조사에서 "재직 중 취득한 비밀을 말할 수 없다"며 진술을 거부했었다. 진실위는 이씨의 지시를 받아 파리에서 살해 작업을 실무적으로 수행한 당시 중정 연수생 2명 등 관련자의 진술로 이씨의 '주도' 혐의를 확인했으며 지난해 5월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실위 간사인 가톨릭대 안병욱 교수는 6일 "중간 발표 이후에도 진실위는 교회의 지인 등을 통해 이씨에게 진술해 줄 것을 설득했으나 그는 계속 거절했다"며 "핵심 관계자가 사망해 최종 발표에 어려움이 생겼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중간발표에서 이씨가 79년 10월 1일 귀국해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을 만나 살해에 사용할 목적으로 소련제 소음 권총과 독침을 건네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정 연수생 2명은 이씨의 지시를 받아 그해 10월 7일 제3국인 2명을 시켜 김형욱씨를 살해하고 시체를 파리 근교 낙엽 밑에 파묻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보부는 김씨가 박정희 정권을 배반해 미국에서 정권의 비리와 국가기밀을 폭로하고 카지노에서 외화를 탕진하자 그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상렬씨는 포병 출신으로 보안사를 거쳐 1970년대 초 정보부에 들어가 주로 해외 파트에서 근무했다. 여러 인사는 "이씨는 시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조직의 명령에 따라 전직 장관을 살해하는 일에 관여했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엄청난 번민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고 말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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