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상기자의맛GO!] 서울 보광동 댓잎갈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니면 골탕 먹기 딱 좋은 곳. 다행히 '인간 네비게이터'라고 자칭하는 친구 덕에 단박에 찾아냈다. 기쁨도 잠시. "어~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긴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의기당당하게 앞서던 친구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며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다.

벽에 걸린 패널 때문이다. 손바닥 만한 TV 화면이 조잡스럽게 펼쳐진 사진. TV에 소개된 것을 알리는 홍보물이다. 예전에는 이것들이 손님을 끌어들이는 '삐끼'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요즘은 흔하디 흔해 신뢰도가 땅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 KBS.MBC.SBS.CNN에도 안 나온 집'이란 문구가 구닥다리 버전으로 전락했을 정도다. 그런 음식점으로 안내했으니 뒤에서 들리는 한숨소리의 의미를 친구는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매번 새로운 맛집을 찾는 건 이제 백사장에서 진주 찾기나 다름없어. 그나마 이 집의 패널은 '더덕더덕'은 아니잖아." 언짢은 마음을 달래주려 애를 쓴다.

"매스컴이 인정한 곳이라며 폼 재는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심해. 외국에선 더 큰 자랑거리가 있어도 조심스럽게 표현하거든." 기분을 가라앉히고 식탁에 앉았다.

친구가 더 이상의 말을 막으려 종업원을 불러 돼지갈비를 주문한다. 석탄이 아닌 숯불 화로가 오른다. 뒤이어 김치.샐러드 등 기본 반찬과 쌈 거리가 한 상 깔린다. 석쇠가 달아오를 즈음 돼지갈비가 나왔다. 한 덩어리가 어른 주먹 만하다. 갈빗살을 펼치니 댓잎이 하나씩 들어 있다. 상호가 왜 '댓잎갈비(02-796-3355)'인지 알아차렸다. 대나무 수액, 감잎 등과 함께 만든 양념으로 재운 갈비란다. 두툼한 고기 살이 달달하고 부드럽다. 숯 향이 배어 감칠맛이 더하다. 노른자가 올라간 파 무침을 곁들이니 매콤하다. 2인분 고기를 다 먹기도 전에 한 대접 있던 파 무침이 바닥을 보였다. 옆 자리에서도 파 무침을 더 달라고 종업원에게 재촉한다. 둘 다 과식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1인분(9000원)을 추가했다. 그리고 된장찌개(5000원)로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이 글도 홍보용 패널을 위한 '엉뚱한 짓'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뒷맛이 텁텁해진다.

유지상 기자

■ 전화 번호=02-796-3355

■ 추천 메뉴=댓잎갈비 9000원(280g, 포장은 6000원),된장찌개 5000원 (부가세 포함)

■ 영업 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연중무휴

■ 주차 공간=주차대행 서비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