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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과잉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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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의 가장 큰 장점은 늘 젊은 청춘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로사항이 전혀 없지는 않다. 세대 차이라고 해야 할까.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보다 유튜브를 검색하는 것이야 그렇다고 해도, 공부를 한다면서 소란한 카페를 간다니. 예전에는 시험기간이 되면 도서관 자리를 잡겠다고 새벽부터 한두 시간씩 줄을 서곤 했지만, 요즘 학생들은 도서관이 아니라 학교 근처 카페에 좋은 자리를 맡느라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중독처럼 듣다보니 배경과 소음으로 버려지는 음악 #절제와 기다림으로 들어야 아름다움 느낄 수 있어

학생들이 도서관 대신 카페를 찾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카페의 소음 때문이란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매장에서 틀어놓은 음악 덕분에 오히려 집중이 잘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카페에서 하는 이른바 ‘카공족’이 늘어나다보니 이들을 겨냥해 공부방으로 변신한 스터디 카페들도 적지 않다. 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기분 좋은 소음은 자율감각에 쾌락 반응을 일으켜 집중력을 높인다고 한다. 이런 소음을 백색소음이라고 한다나. 이런 소리와 음악을 만들어 공급하는 전문 회사들도 많이 생겼다고 하니 세상은 늘 흥미롭다.

배경음악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돈에 있어서는 지행일치의 달인인 상인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매장에서의 음악이 매상을 올린다고 하니, 이제는 마케팅 수단으로 음악을 적극 활용한다. 고객을 매장에 더 오래 머물게 하면서 충동구매를 하도록 만들 때는 느린 템포의 편안한 음악을 틀고, 할인 행사를 벌여 고객 회전율을 높이고 싶을 때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틀면서 말이다. 주의 깊게 듣지 않는 배경음악이 우리의 구매 행동을 결정한다니. 중요한 것일수록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두에게 좋은 일은 드문 법이다. 누군가가 정성으로 만들고 노래했을 음악이 이제는  배경음악이거나 소음이라니. 당사자들로서는 슬플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들려지는 게 어디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음악이 공연장을 벗어나서 녹음되기 시작한 지 백여 년, 그때부터 이미 음악의 운명은 청중의 손에 맡겨진 셈이다. 음악을 조용히 집중해서 들을지, 밥을 먹으면서 배경으로 틀지, 혹은 다른 소음을 막아주는 무기로 사용할지는 오로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제아무리 숭고한 예술적 가치와 경건함을 자랑하는 명곡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양과 질의 대체관계라고 해야 할까. 그 대신 우리들의 삶에서 음악과 접촉하는 시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음악을 피하기 어렵다. 음악이 없는 조용한 장소에 서면 오히려 어색하고 불안을 초래할 정도이니 일종의 중독증이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음악 듣기를 멈추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 건강을 위해 음악이 없는 날이라도 지정해야 할 판이다. 이제는 음악의 오남용을 경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지나쳐서 좋은 일은 없다. 무엇이든 너무 많으면 진정한 가치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먹는 음식도 그렇다. 음식이 많다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정말 먹고 싶은 것 한가지면 충분하지 않은가. 여간해서는 맛집에 뷔페가 포함되지 않는 이유다. 너도나도 큰집을 가지려 하지만, 너무 크면 청소하기 힘들고 세금만 많이 나온다. 자기에게 맞는 집이 최고다. 아토피도 알고 보면 과잉에서 발생하는 병이란다. 그래서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안 하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이라고.

부족도 문제지만 과잉도 문제다. 많아서 좋은 것도 있겠지만 조금은 부족해야 좋은 것도 있으니까. 연애를 해 본 사람은 알리라. 오랜 기다림 후의 만남이 더 좋다는 것을. 그리고 기다림은 결핍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것을. 가끔은 연애하는 심정으로 음악을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진정 음악을 사랑하고 싶다면.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