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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국경을 열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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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35면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내가 좋아하는 서아프리카 뮤지션 중에 티켄자 파콜리 (Tiken Jah Fakoly)가 있다. 서아프리카 레게의 전설인 알파 블론디(Alpha Blondy)의 맥을 잇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레게 뮤지션이다. 그의 대표작이 ‘국경을 열어라(Ouvrez Les Frontiers)’다. 프랑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프리칸 래퍼 소프라노가 피처링한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해마다 와요/올 때마다 우리는 두 팔 벌려 맞이하죠/여기와도 당신 집에 있는 것/우리도 떠나고 싶어요/문을 열어줘요….’ 그러면서 후렴구로 ‘국경을 여시오/국경을 여시오/우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하고 외친다. 이것이 진정한 아프리카 정신이다. 아프리카에 원래 이방인의 개념은 없었다. 사람은 지나가고 땅은 남고 그 땅에 또 다른 사람이 지나갈 뿐이다.

땅의 원래 주인은 누구인가. 쥐라기에 공룡들은 월세를 내지 않았다. 자연은 땅을 지어 터전 삼으라고 공짜로 내주었다. 수십억 년의 용솟음과 갈라짐과 씻김과 뒤틀림이 빗어낸 태초의 대지를 누가 계약해서 샀단 말인가. 궁극적으로는 누구도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국경이라는 건 가소롭기까지 하다. 국경은 그 누구의 주인도 아닌 땅에 사람이 마음대로 그은 선이다.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경은 그 광활한 땅을 멋대로 나눠 먹은 유럽의 백인들이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그어놓은 선이다. 도둑들이 훔친 땅에 임의로 선을 그어놓고 정작 아프리카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하게 했다. 서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에서 국경은 무의미하다. 가령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를 비자 없이 그냥 버스 타고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두 나라 모두 만딩고 족이 사는 땅이고 나라 개념은 그 위에 덧붙여진 거추장스러운 겉옷에 불과하다.

삶의 향기 4/21

삶의 향기 4/21

국가와 국경의 개념이 지금의 상태로 지속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짧은 생각이다. 국가는 인류사의 한 시기에 등장한 일시적인 집단 개념이다. 근대에 국가의 개념과 영역이 확립됐다면 미래는 반대로 그것들이 해체되고 모호해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가상화폐가 돈의 국경을 없앤다. 더는 중앙은행이 필요 없는 시대, 모든 이가 개별적인 작은 은행이 되는 시대, 그것이 블록체인의 시대다. 현실의 국경을 넘으려면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이슬란드 사람이 오로라 사진을 인스타에 올려놓으면 아마존 강변에 사는 사람이 ‘좋아요’를 누른다. 이 과정에서 국경은 완전히 무의미하다. 나라는 존재하되 국경은 열리는 시대가 곧 온다. 전 세계 모든 이의 자유 왕래가 가능해질 것이다. 먼 미래의 꿈같은 얘기일지 모르나 방향은 그쪽이다. 국경을 닫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이런 시대가 다가오는 마당에 세계 어떤 나라도 가지지 못한 국경이 우리 땅 한가운데 있다. 여권이나 비자 따위로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선. 지척인 곳들을 지구 끝보다도 더 멀어지게 만든 선. 티켄자 파콜리는 노래한다. ‘케이프타운(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브롤터 해협(아프리카 최북단)까지/모두 약속 없이 오가고 여행하길 원해요.’ 이것이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다. 그 넓은 대륙이 하나라는 생각도 품는데 이 작은 나라에서 휴전선이라니.

인도 사람들은 남한 북한이 나뉘어 있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옆 동네도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어려운데도 인도는 그 큰 땅덩어리가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 금요일에 남한 사람 한 명과 북한 사람 한 명이 그 선 위에서 만난다. 서로 인사하고 통역 없이 대화하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역사적인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떤 일상의 시작이라 여기고 싶다. 어느 평범한 날의 소박한 여행과 만남, 그 한 장면 말이다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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