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 남해 외딴섬에 생필품 선물 3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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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수호천사'라 불리는 반봉혁·이재언·정영택씨(오른쪽부터)가 추도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주고 있다. 여수=장정필 프리랜서

"이 사람들 아니면 이도 못 닦고 육지에서 파는 라면을 어떻게 먹어 본당가." 4일 오후 1시40분쯤 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선착장에서 배로 30여 분 걸리는 추도. 비가 내리는 가운데 40, 50대 남자 세 명이 배에 라면 등 생필품을 가득 싣고 이 섬을 찾았다. 여수에 사는 반봉혁(54.개인사업).이재언(54.목사).정영택(47.목사)씨가 그들이다. 반씨 등이 인구 다섯 명인 이 섬을 찾은 이유는 여객선이 다니지 않아 육지 나들이를 못하는 이들에게 생필품을 나눠 주기 위해서다. 섬 주민에게 '바다의 수호천사'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이 마련한 라면.두부.휴지.치약.바나나 등 100만원 상당의 생필품과 먹거리를 전달했다.

감기약 등 응급약품을 나눠 주면서 복용법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한 달치 생필품을 받은 주민들은 "뭐로 보답해야지"라며 냉수 한 사발씩을 반씨 등에게 건넸다.

주민 이영식(83)씨는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육지에 나갈 배도 없지만 이들 덕에 도시 사람 못지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다의 수호천사'들은 여수시와 고흥군 관내 15개 섬의 주민 230여 명을 돌보고 있다. 이들 섬은 행정기관의 손길도 미치지 못해 주민들은 복지 등 각종 혜택에서도 소외돼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집안의 큰 행사가 있을 때 등 1년에 한두 차례 어선을 빌려 육지 나들이를 할 뿐 생필품을 구입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이들은 소득이 거의 없어 바다에서 물고기와 소라 등 어패류를 잡아 생계를 꾸려 가고 있다. 쌀은 인근 섬 어민들에게 부탁해 구입한다. 특히 추도 등 일부 섬은 물이 없어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섬 주민들을 반씨 등이 본격적으로 돌보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목사인 이씨가 1996년부터 섬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다 섬 주민들이 이발은 물론 목욕도 제대로 못하고 생필품도 구입하지 못해 생활에 불편을 겪는 것을 보고 뜻을 모았다.

이들이 가는 코스는 여수시 추도~수황도(40여 분)~소횡간도(30여 분)~광도(20여 분)~평도(30여 분)~고흥군 수락도 구간과 첨도~송여지도~애도~운도 등 두 가지다. 그러나 한 번 가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장도 등 먼 거리에 있는 섬 다섯 곳은 서너 달에 한 번씩 간다.

섬을 방문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한 차례 보통 100만원 정도다. 쇠고기 등 비싼 먹거리를 구입할 때는 200만원 정도 들어갈 때도 있다. 비용은 개인사업을 하는 반씨가 대부분 내고 주변 사람들의 후원을 받기도 한다. 이들이 타고 다니는 4.5t짜리 쾌속선 '등대호' 구입비 2500만원도 세 명이 각자 사비로 부담했다.

섬에서 태어난 반씨는 "문화.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섬사람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며 "사업을 해 경제적 여유가 생겼으므로 섬 주민을 돕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수=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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