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150만원 못 낸 심부전 환자 ‘노역장’ 이틀 만에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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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전증(심장 기능 이상)을 앓고 있던 5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벌금 150만원을 납부하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숨졌다고 한겨레가 21일 보도했다. 이 환자는 주민센터의 긴급지원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숨지기 엿새 전 퇴원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구치소 내부[연합뉴스]

구치소 내부[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모(55)씨는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마트 의자에 놓여 있던 핸드백을 훔친 혐의(절도)로 벌금 150만원의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그가 훔친 핸드백 안에는 드라이어 등 물품이 들어 있었으며 훔친 핸드백과 물품의 총액은 80만원 남짓이었다. 매체는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가 7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아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 있는 한평 남짓의 좁은 방에서 홀로 생활했다고 전했다. 일용직과 노숙생활을 전전했던 김씨에 대해 쪽방촌 그의 지인들은 벌금 150만원을 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6개월 가까이 숨이 차오르는 증상이 계속되 병원을 찾은 김씨는  ‘폐부종을 동반한 심부전’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병원비를 낼 수 없었던 김씨는 퇴원을 요구했지만 그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담당 의사는 병원 쪽에 ‘김씨의 수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고, 다행히 병원은 그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기 때문에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서울형 긴급지원’으로 수술을 받긴 했지만 긴급지원금 100만원으로 수술비와 입원비를 모두 감당하기엔 모자라 김씨는 지난 9일 중간정산을 하고 퇴원한다.

하지만 퇴원한 지 나흘 만인 지난 13일 오전 10시 그는 서울구치소에 입감됐다. 벌금 미납에 따른 노역장 유치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15일 오전 8시45분, 그는 경기 안양시 한 병원으로 이송된 지 한시간여 만에 숨졌다. 부검 결과 그의 사망 원인은 ‘심부전 악화’였다.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나흘 만에 벌금 150만원 때문에 노역장에 유치됐고,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사망한 것이다.

당시 김씨가 작성한 ‘체포·구속 피의자 신체확인서’를 보면, “지난달 급성 심부전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치료 중 최근 퇴원해 약물치료 중에 있으며, 이 병으로 인해 가슴과 머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김씨를 위해 국가기관이 어떤 조처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김씨가 이틀간 짧은 수용 생활을 했던 구치소 쪽과 교정본부를 관할하는 법무부, 그를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지휘한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른 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입감 당시 의료진이 진료를 했고 환자라고 판단해 병동에 수용하라고 해서 병동에 있었다”며 “전염병이 아니고선 모든 피의자를 입감시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사가 노역장 유치 집행을 지휘하면 구치소는 이에 따를 뿐”이라며 “구치소 입장에서는 피의자를 마음대로 빼거나 넣을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문홍성 법무부 대변인은 한겨레에 “법무부 교정본부는 수용자만 관리할 뿐 피의자가 어떤 혐의인지도 알기 어렵다”며 “검찰에 문의해 달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박찬호 2차장도 매체를 통해 “원칙에 따라 벌금을 안 내면 노역장 유치를 지휘한다. 노역장에 유치할 당시엔 사망자의 심부전증은 확인이 안 된 사항이었다. 입감 당시 건강 상태는 교정당국에서 확인한다”고 했다.

김씨의 동생은 “퇴원한 지 나흘밖에 안 된 사람을 벌금 150만원 때문에 꼭 가뒀어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힘겹게 살아온 형이 너무 허무하게 떠난 것 같다”고 매체에 전했다. 가족들은 김씨의 장례를 아직 치르지 않았다. 김씨의 주검은 20일 현재 병원 영안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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