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운명의날] 미리보는 이사회…법정관리 신청은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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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노사 교섭이 열리는 부평공장 복지회관 건물. 인천 = 문희철 기자.

한국GM 노사 교섭이 열리는 부평공장 복지회관 건물. 인천 = 문희철 기자.

한국GM 노사가 20일 제11차 교섭 잠정합의안을 가결하든 부결하든 한국GM 이사회는 무조건 열린다. 법정관리 이외에도 한국GM 이사회가 처리해야 하는 안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GM 노사가 잠정 합의에 실패한 상황에서 이사회가 열리면, 한국GM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지난번 이사회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금이 유입되지 않을 경우 채무 지급불능 사태가 발생한다”고 보고한다.

이 안건을 접한 한국GM 이사진은 한국GM에 자금을 추가로 투입할지를 두고 찬반투표에 돌입한다. 한국GM 이사회의 의결 정족수는 재적이사 과반수 출석, 출석이사 과반수 찬성이다. 20일 이사회에 참석하는 이사를 기준으로, 9명의 이사진 중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선임한 이사는 모두 5명이다. KDB산업은행이 선임한 사외이사가 어떤 결정을 하든 GM 본사의 입장을 저지할 방법은 전혀 없다.

이들이 모두 찬성하면 결국 한국GM은 파산보호(bankruptcy protection)를 요청할 전망이다. 한국 제도상으로는 법정관리를 뜻한다.

한국GM 이사진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더라도, 한국GM이 23일 즉시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지는 않는다. 다만 채무를 추가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는데 현금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상법·노동법상 형사처벌 대상이라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 20일 한국GM 이사회는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미리 이사진의 동의를 확보하는 절차다.

배리 엥글 GM 총괄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오른쪽)과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중앙포토]

배리 엥글 GM 총괄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오른쪽)과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중앙포토]

한국GM은 당장 25일 사무직·생산직 근로자에게 임금(800억원)을 줘야 하고, 27일 희망퇴직자 2600여명에게 위로금(5000억원)도 지급해야 한다. 협력업체 대금도 결제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일단 이때는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한국GM은 퇴직자들에게 위로금 지급이 유예될 수 있다는 내용의 동의서에 서명을 받아둔 상황이다.

하지만 GM 본사가 한국GM에게 빌려줬던 차입금(1조7100억원)의 상환일이 다가오면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 이 돈을 갚아야 하는 시점은 이미 지났지만, GM은 경영 실사 이후로 상환일을 유예한 상황이다. 경영 실사가 종료하고 GM 본사가 차입금 상환을 요구하면 법정관리는 불가피하다. 또 그 전이라도 협력사 등에서 대규모 채무를 갚으라고 요구할 경우 법정관리에 돌입할 수 있다.

한국GM이 한국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법원은 회계법인을 선임해 자산 실사 작업에 착수한다. 이 작업은 통상 두 달가량 소요된다.

20일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직원들. [중앙포토]

20일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직원들. [중앙포토]

실사 과정에서 회사를 청산했을 때 회수할 수 있는 가치(청산가치)와 계속해서 기업을 운영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계속기업가치)를 분석한다. 청산가치가 계속 기업가치보다 더 크다면 계속 기업가치를 청산가치 이상으로 높일 수 있는 구조조정을 시작한다.

구조조정으로도 기업의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잔여 재산을 매각해 채권자인 GM 본사와 협력사들에 줘야 할 대금을 정산한다. 반대로 계속기업가치가 더 높다면, 법원이 산정한 채권 변재율에 따라 채권을 갚아가며 인수 의향이 있는 다른 기업들을 물색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KDB산업은행이 법정관리 절차를 막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8일 “GM이 KDB산업은행과 협의하지 않고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상법상 법적인 절차를 받아 이사회에서 가결한 사안을 2대 주주인 KDB산업은행이 뒤집을 수 있는 제도는 사실상 없다. 20일 노사협상 부결은 사실상 법정관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인천 = 문희철 기자, 서울= 김도년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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