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엔 '스마트폰 재판'…3000억원대 '스마트법원' 모습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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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구상하고 있는 '스마트 법원'은 당사자가 법정에 직접 오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통해 어디서든 재판에 출석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사진은 화상장치를 연결해 공개된 법정 모습. [중앙포토]

대법원이 구상하고 있는 '스마트 법원'은 당사자가 법정에 직접 오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통해 어디서든 재판에 출석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사진은 화상장치를 연결해 공개된 법정 모습. [중앙포토]

직접 법원까지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집이나 사무실에서 재판에 '접속' 할 수 있다. 키워드 몇 개만 넣어 보면 나와 비슷한 상황에 먼저 처했던 이들의 판결문을 찾아준다. 변호사가 없어도, 궁금한 건 24시간 답해주는 '인공지능 챗봇'이 있기 때문에 '나홀로 소송'이 쉽다….

대법원이 그리고 있는 2024년 '스마트 법원'의 모습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4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스마트 법원 구현을 위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사업'을 예비타당성 대상사업으로 선정했다. 해볼 만 한 사업인지 지금부터 2년 동안 살펴보기로 했다. 예산을 얻게 되면 대법원은 4년 동안 시스템을 만들어 2024년 오픈할 계획이다.

대법, 빅데이터·인공지능 이용해 #법정 출석 대신 온라인으로 재판 구상 #형사 빼고 민사·가사·행정·특허는 가능 #정부, 예비타당성 대상사업 선정

스마트폰 이미지. [중앙포토]

스마트폰 이미지. [중앙포토]

'스마트폰 재판'은 어떻게 가능할까. 피고인이 반드시 나와야 하는 형사재판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민사·가사·행정·특허 재판은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법원의 생각이다. 협의이혼을 예로 들면, 지금은 당사자들이 단지 의사확인을 하기 위해 법원에 나와야 하지만 온라인 재판이 도입되면 잠시 스마트폰만 켜면 된다. 증인신문도 스마트폰으로 할 수도 있고, 변호인도 법정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직접 얼굴을 보거나 신분증을 확인할 수 없다 보니 본인 확인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온라인 재판에 들어오기 위해 로그인·인증을 거치도록 하는 방법이나 영상을 통해 신분증을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대법원 전산정보관리국 정보화심의관 장정환 판사는 "온라인 재판,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지능형 서비스 등은 중국 상해법원에서 이미 시작했고 영국·미국에서도 온라인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예비타당성 검토에 들어간 대법원의 '스마트 법원 구현을 위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사업' 일부 내용. [대법원 자료]

정부 예비타당성 검토에 들어간 대법원의 '스마트 법원 구현을 위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사업' 일부 내용. [대법원 자료]

판사를 도와주는 인공지능도 있다. 인공지능이 화해·조정 가능성을 예측해주거나 비슷한 이전 사례를 찾아주면 판사 입장에서는 업무가 줄어들어 재판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을 더 갖게 된다. 변호사들이 써내는 서면 중 쟁점 문장을 자동으로 추출하거나, 판결문을 쓰기 전 형식적인 초고를 만들어 주는 것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만 갖춘다고 곧바로 가능해지는 일은 아니다. 법원은 판결문들을 '빅데이터'로 만들어 누구나 자유롭게 검색해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지만, 현재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판례는 전체의 0.3%에 불과하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처리된 본안소송 중 0.27%만 판결문이 공개됐다. 이런 기조가 6년 안에 파격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 등 관련법이 개정돼야 하는 문제도 있다.

판결문을 볼 수 있는 대법원의 '종합법률정보' 사이트. 전체 판결문의 0.3%정도가 등록돼 있다. [종합법률정보사이트 캡쳐]

판결문을 볼 수 있는 대법원의 '종합법률정보' 사이트. 전체 판결문의 0.3%정도가 등록돼 있다. [종합법률정보사이트 캡쳐]

돈과 시간의 문제도 있다. 대법원이 생각하고 있는 총사업비는 우선 3054억원이다. 시스템을 갖추는 데 1916억원, 이후 5년 동안 시스템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1108억원이 든다고 본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나 홍보 비용은 별도다. 5년 뒤에는 다시 유지관리비를 책정해 예산을 받아야 하는 점까지 감안하면 결과적인 사업비는 3054억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시스템을 통해 국민의 소송비용, 법원의 인건비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24년 도입 후 10년 동안 얻게 되는 편익을 5조 390억원으로 산정하고 있다.

6년 뒤인 2024년에는 지금 예측할 수 없었던 신기술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장정환 심의관은 이에 대해 "이행 기간에 나오는 새로운 기술들은 반영 도입해 구식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예비타당성 단계인 지금으로선 대략적인 큰 줄기를 구상하고 있다. 구체화된 뒤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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