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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부담 느끼는 신세대 용어, "썸 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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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더,오래 시 한수] 윤경재의 나도 시인(6) 

[사진 윤경재]

[사진 윤경재]

사랑의 고백

그대여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슬픔을 안을까 주저 마세요

살아가다가
한겨울에 내리는 눈은
떠나온 발자국을 남겨서
돌아보며 걷고 싶게 만들고
음악 싣고 쏟아지는 가뭄 비는
그리움 씻어주고 떠나가니
혼자라도 길 나설 수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도
사랑한다며 다가서는 산 앞에서
호수가 되어
산 그림자를 비추는데

그대 앞에 서기만 해도 떨리는 저야
나를 만나 기쁘시다면
사랑한다는
말씀만으로도 행복하답니다

[해설] 실패한 사랑도 추억의 선물 남긴다

사랑이라는 뜻도 세월 따라 세태에 따라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남녀 간에 좋은 감정을 갖고 사귀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는데 점차 바뀌어 간다.

1950~60년대에 와서는 ‘연애’라는 명칭을 얻었다. 1954년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나오면서 사랑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연애라는 감정을 동반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때부터 연애는 여성도 남성만큼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인정되었다. 그래서 중매가 아닌 연애결혼이라는 걸 선망하는 풍조가 나오기 시작했다. 꼭 결혼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연애라는 말 자체는 기쁨과 설렘, 흥분을 주었다.

최근에는 젊은이 사이에 ‘썸 탄다’라는 말이 사랑과 연애라는 단어 대신에 통용된다. ‘썸 탄다’는 말뜻을 이해하면 신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이상한 단어의 의미는 사랑과 연애에 부담감을 느끼는 신세대가 그렇다고 남녀 간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호기심마저 포기할 수 없어 만든 용어이다.

'썸탄다' 사랑에 부담 느끼는 신세대 용어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썸타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그려가는 '진짜 연애'에 대한 이야기. [사진 JTBC 홈페이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썸타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그려가는 '진짜 연애'에 대한 이야기. [사진 JTBC 홈페이지]

서로 알아보는 단계는 지났으나 확정적으로 결혼까지 이르기에는 부담스러운 관계를 뭉뚱그려 ‘썸 탄다’고 하는 것 같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땐 경박한 말 같아 어색하고 이마가 찡그려졌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창 청춘사업에 몰두해야 할 젊은 나이에 사회적 제약으로 맘껏 인간의 본성을 누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해서 왠지 애잔함이 느껴졌다. 설레는 사랑의 감정마저 억눌러야 하는 세태라니 결혼 적령기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다. 용어가 무엇이 되었든지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닌가? 이끌림을 포기하지 말자. 그러나 예의 있고 신중하게 다가가자.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장난으로 희화하지는 말자.

눈과 비도 때에 맞추어 내리지 않는가? 호수도 산이라는 그대가 있어 생기지 않았던가? 시간과 흐름을 억지로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사랑은 실패로 끝나더라도 추억과 기쁨을 선물로 준다. 나머지 생을 혼자서라도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리운 임이 꼭 남녀라는 대상이 아닐 때가 온다. 사랑의 대상이 자연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다. 어떤 신념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의 대상도 바뀐다는 걸 알아챈다면 그 시기에 맞는 사랑을 찾아 영원한 청춘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사랑을 잃었어도 안타까워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지레짐작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인생의 커다란 줄기를 놓치는 일이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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