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라이프 트렌드]취미·재능 빌려 써 비용·시간 아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쓴다’는 개념의 공유경제는 집과 사무실, 교통수단에서 출발해 이제는 취미·재능으로까지 확산된다. 1인 가구 증가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면서다. 렌털 시장도 몸집이 커졌다. 발품 팔 필요 없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내가 원하는 것을 필요한 기간만 사용하거나 나의 지식을 나누고 또 배우는 자발적인 경제 문화는 수요와 공급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진화하는 공유경제

# 직장인 박한별(30·서울 아현동)씨는 요즘 취미 공유 플랫폼 ‘프립’을 자주 방문한다. 청계산 등산, 경기도 포천 딸기농장 체험, 강원도 홍천 카약 타기 등은 모두 프립을 통해 경험했다. 박씨는 “주말에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프립 프로그램으로 소소한 힐링을 맛본다”며 “혼자 하려면 준비할 게 많은데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큰 비용 들이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탈잉’을 통해 메이크업 클래스를 진행 중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진도경씨(오른쪽)와 수 강생 최아름씨.

탈잉’을 통해 메이크업 클래스를 진행 중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진도경씨(오른쪽)와 수 강생 최아름씨.

# 유명 걸그룹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진도경(26·서울 화양동)씨는 두 달 전부터 재능 공유 플랫폼 ‘탈잉’에서 메이크업 클래스를 열었다. 수강생이 실제 사용하는 화장품으로 자신의 얼굴에 직접 화장을 해보는 맞춤형 강좌다. 진씨는 “이제 막 화장을 시작한 대학 신입생과 사회 초년생 수강생이 많다”고 전했다. 강좌 개설 두 달 만에 진씨의 수업을 들은 사람은 179명에 달한다. 수강생 최아름(26·서울 서초동)씨는 “메이크업을 배우려고 학원에 가긴 부담스럽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따라 하는 건 한계가 있다”며 “시간과 장소를 유동적으로 정하고 강사와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어 이 강좌가 좋다”고 말했다.

돌봄 공유 플랫폼 ‘자란다’

공유경제가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 둔화,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공유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세계 공유경제 시장 규모가 2013년 150억 달러에서 2025년에는 335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 같은 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거래량이 늘면서 산업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공간·교통 같은 유형 자원의 공유를 넘어 경험·시간 등 무형의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발표한 ‘공유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공유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한 요인으로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률을 꼽았다. 김민정 KDI 연구위원은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해 사업 초기에 큰 비용 부담 없이 새로운 상품이나 아이디어의 시장성을 시험할 기회의 장이 열렸다”며 “특히 금융 공유(크라우드 펀딩), 재능 공유 분야에서 현실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인기를 끄는 서비스는 취미와 재능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야외 활동이나 취미 활동을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는 ‘프립’을 통해 래프팅·서핑·패러글라이딩·카약·클라이밍 같은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여가 활동에 도전할 수 있다. 현재 구글플레이에서 프립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로드 수는 10만 건이 넘는다.

 유아와 아동을 대학생 선생님과 연결해주는 공유 플랫폼도 등장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자란다’는 2~4시간의 돌봄 공백이 생기는 아이에게 대학생이 직접 방문해 아이 성향에 맞는 학습, 놀이 위주의 돌봄 서비스를 진행한다. 1200여 명의 대학생이 활동 중이며 월간 방문 횟수 1300여 건, 누적 방문 시간은 2만여 시간이다.

 온라인 재능 공유 플랫폼 ‘탈잉’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강의로 등록해 수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 직장인을 위한 엑셀·포토샵 강좌부터 메이크업 클래스, 보컬·디제잉·댄스·악기·작곡 레슨까지 다채롭다. 지난해 2월 서비스를 선보인 뒤 자신의 재능을 등록한 강사는 2000명, 수강생 수는 3만5000명에 달한다. ‘숨고’ ‘크레벅스’ 같은 재능 공유 플랫폼에서도 시중 학원 수강료보다 적은 비용으로 각종 개인교습을 받을 수 있다.

생활용품 렌털 시장 쑥쑥↑

공유경제가 확산되고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렌털 시장도 몸집이 커졌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렌털 시장은 2012년 10조원 규모에서 지난해 25조9000억원으로 성장했다. SK매직·코웨이·쿠쿠전자 등 중소 가전업체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렌털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어 사업 영역을 키우고 있다. 렌털 품목도 비데·정수기·공기청정기 등에서 의류 관리기·건조기 등으로 다양하다.

롯데렌탈의 플랫폼 ‘묘미’는 앱뿐 아니라 체험 공간에서도 대여 제품을 고를 수 있다.

롯데렌탈의 플랫폼 ‘묘미’는 앱뿐 아니라 체험 공간에서도 대여 제품을 고를 수 있다.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빌릴 수 있는 서비스도 나왔다. 롯데렌탈은 지난해 8월 가전제품, 유아·아동용품, 레저용품 등 1000여 가지 상품을 빌릴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렌털 플랫폼 ‘묘미’를 선보였다. 지난 2월엔 신상 명품 브랜드 핸드백을 하루 기준 최소 5900원에 대여할 수 있는 명품백 렌털 서비스를 출시했다. 론칭 6개월 만에 묘미 앱 다운로드 수가 40만여 건에 달한다. 최창희 롯데렌탈 소비재렌탈부문장은 “변화하는 소비 패러다임에 맞춰 사자니 부담되고 사고 나면 후회하는 제품을 빌릴 수 있는 종합 렌털 서비스를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패션 업계에서도 렌털 열풍이 거세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 부문은 올해 초 남성 캐주얼 편집 브랜드 ‘시리즈’를 통해 의류 대여 서비스를 선보였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편집숍 ‘시리즈코너’에선 3일 기준 5000~3만원을 내면 신상품을 빌릴 수 있다. 소비자 반응이 좋아 지난달엔 업사이클링(재활용 의류) 브랜드 ‘래;코드(RE;CODE)’에서도 대여 서비스를 내놓았다. 대여료는 3일 기준 1만5000~4만원이다. 서비스 이용 후 구매할 경우 30% 할인된다. 최근 이 서비스를 이용한 서형인(37·서울 청담동)씨는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지만 가격이 부담돼 구입을 망설인 적이 많았다”며 “3일 동안 편하게 입어본 뒤 구매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코오롱FnC는 남성 캐주얼 브랜드 ‘시리즈’에서 의류를 빌릴 수 있는 ‘스타일링 렌탈 서비스’를 선보였다.

코오롱FnC는 남성 캐주얼 브랜드 ‘시리즈’에서 의류를 빌릴 수 있는 ‘스타일링 렌탈 서비스’를 선보였다.

 전문가들은 소유의 개념이 바뀌면서 공유경제의 확산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성식 공유경제협회장은 “국내에서는 아직 공유경제가 도입 단계”라며 “하지만 유휴 자원을 공유해 다양한 자원거래 모델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불특정 다수의 개인이 정형화되지 않은 서비스를 거래하는 특성상 서비스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산업과의 갈등도 부담이다. 숙박과 차량 공유의 경우 기존 서비스 일부를 대체하면서 숙박이 택시 업계의 반발이 크다.

 하 협회장은 “해외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한 공유경제 창업이 활발하지만 대부분 소규모인 데다 ‘공유’로 포장했지만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변형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글=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인성욱, 각 업체 제공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