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민태 "대기록 부담 벗어 오히려 홀가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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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비가 오는 수원 구장 더그아웃에서 만난 정민태(33.현대.사진)의 옷차림은 가벼웠다. 헐렁한 티셔츠가 이런저런 부담을 떨쳐버린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정민태는 빗줄기에 젖어 더욱 파래진 구장을 바라보며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바로 전날 선발 22연승에 도전했다가 대기록이 깨진 정민태였다. 정민태는 7과3분의2이닝 동안 삼성 타자들에 홈런 2개를 포함해 10안타 7실점했다. 2000년 7월 25일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맛본 패배였다. 1982년 박철순이 세운 22연승에 딱 한발짝 못 미친 기록이었다. 아쉬울 만도 했다. 다시는 안 올지도 모르는 기회였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였다. 그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은 결과였고, 크게 아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록'보다는 오히려 '재기'를 더 기뻐했다. 올해 초 일본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주위 사람들은 "국내에서 통할까"라며 '반신반의'했다. 그는 "화가 날 만큼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보낸 2년간의 일본 생활을 '실패'로 보는 시선도 싫었다. 정민태는 "자이언츠의 투수 코치는 인사를 해도 받지 않을 만큼 나를 따돌렸다"며 "2년간 스무번 정도 중간계투로 나간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3년 계약을 깨고 2년 만에 돌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돌아온 정민태는 깜짝 놀랐다. 2년 새 국내 프로야구는 부쩍 자라있었다. 그는 "변화구 앞에선 맥을 못추던 예전의 타자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일본과 달리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친 국내 타자는 힘이 좋았고 일본 타자들의 세밀한 타격 기술도 거의 따라잡은 상태였다. 정민태는 "갈수록 한국에서 투수 해먹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1연승은 쉽지 않았다. 그는 "특히 5월 27일 수원 기아전에서 3분의2이닝 동안 6실점하며 1회에 강판되고도 패전을 면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며 당시 12-10으로 역전승한 팀 방망이를 21연승의 '공신'으로 꼽았다.

그래도 욕심은 우승이다. 그는 "삼성과 기아, 둘 중 하나가 한국시리즈에 올라오리라 본다"고 말했다. 마운드가 막강한 기아와는 팽팽한 투수전을 예상했다. 또 방망이가 센 삼성과 싸운다면 약점인 마운드를 집중 공략해 초반에 기선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누가 올라오든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다"며 "플레이오프에서 장기전을 치러 힘이 빠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민태는 "시즌이 끝난 뒤 휴식 기간이 꽤 긴 만큼 한국시리즈에선 더 빠르고, 더 예리한 변화구를 선보이겠다"며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3년은 더 마운드에 설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수원=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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