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못 늦추는 '대기 근로자', 건강 이상 위험 최대 2.1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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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근무에 들어간 근로자들이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간 근무에 들어간 근로자들이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경찰·소방관·군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언제든 상황이 생기면 쉬는 날이라도 급히 근무를 나가야 하므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기 근로자'라는 점이다. 그런데 대기 근로자들에겐 건강상 문제가 생길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재범 아주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팀은 8일 대기 근로자와 그렇지 않은 근로자의 건강 상태를 비교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2011년 근로환경조사에 참여한 임금 근로자 2만9246명을 분석한 결과다.

아주대 의대 연구팀, 근로자 2.9만명 분석 #경찰·군인 등 상황 생기면 출동하는 직종 #일반 근로자보다 복통과 우울, 불면증 ↑ #스트레스, 교대 근무 피로감 등이 영향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9.3%(2723명)이 대기 근무를 하는 것으로 분류됐고, 나머지 90.7%(2만6524명)는 일반적인 근무자였다. 연구팀은 이들의 개인적 특성과 근무 환경 등을 보정해서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대기 근로자에게선 심혈관질환을 제외한 신체적ㆍ정신적 건강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두드러지게 컸다.

대기 근로자가 청력 이상을 겪을 확률은 일반 근로자의 2.06배였다. 요통(1.22배)과 상반신 근육통(1.23배), 하반신 근육통(1.27배)도 마찬가지였다. 복통이 나타날 위험성은 1.37배, 전신에 피로감이 나타나는 경우도 1.36배 많았다. 대기 근로자가 웬만한 신체적 문제에 더 노출됐다는 의미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기 근로자는 우울 등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중앙포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기 근로자는 우울 등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중앙포토]

정신적인 어려움도 많이 호소했다. 우울ㆍ불안 장애를 겪는 비율은 대기 근로자가 일반 근로자의 1.43배에 달했다. 불면증과 수면장애 확률도 1.4배 높았다.

이는 언제든 근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스트레스를 겪는 일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대기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육체적인 일을 하는 직종이 많고, 교대 근무와 임시직(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흔한 야간 근무, 근무 연장에 따른 피로 누적과 불안정한 신분에 따른 압박감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대기 근무가 건강 문제와 신체 손상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까진 보건 의료 직종에만 초점을 맞춘 연구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직종에 따른 인과 관계 파악을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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