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보이스피싱에…‘어르신 강사단’에 ‘방문 경찰’도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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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시 중구 LW컨벤션에서 열린 '찾아가는 방송통신교실' 강사단 교육 현장. 정용환 기자

4일 서울시 중구 LW컨벤션에서 열린 '찾아가는 방송통신교실' 강사단 교육 현장. 정용환 기자

4일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의 한 대형 강의실. 50여명의 시민이 강단에 선 강사의 설명 자료에 집중하고 있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인 '어르신 수강생'들이 듣고 있는 수업은 보이스피싱 예방에 관한 내용이었다.

"검찰청이라면서 '당신에게 체납된 금액이 있으니 우선 통장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통장을 가지러 안방에 가려다 뭔가 이상해서 '당신 전화번호를 먼저 알려달라'고 하니까 뚝 끊더라고."

백발이 성성한 한 수강생이 최근 자신이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경험에 대해 발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저런 식으로 많이들 당하더라고''내 친구도 저렇게 당할 뻔하다가 다행히 돈을 주진 않았어' 등 비슷한 경험담이 쏟아져나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 어르신 수강생들은 '찾아가는 방송통신교실 어르신 강사단'이다. 이들은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에서 연 3회 주최하는 교육을 받은 뒤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자신이 사는 곳 근처의 노인정·복지관·공공기관 등을 찾아가 배운 보이스피싱 예방법을 또래 노인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6년째 '어르신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기(72)씨는 "한 달에 2~3회 정도 노인정 등에 현장 강의를 하러 가는데 '보이스피싱을 안 당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칭찬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시키기 힘든 노인들도 있다 보니 '은행이나 현금지급기로 가라는 전화를 받으면 일단 자녀들에게 물어본 뒤에 행동하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끊이지 않는 보이스피싱 때문에 등장한 새로운 시도는 이것만이 아니다. 경찰에도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올해부터 수사과장이 담당 지역 내 은행 지점을 하루에 두세곳씩을 방문하면서 협조 요청을 하고 있다. 은행원들에게 "큰 금액을 서둘러 인출하려고 하는 등의 사례가 있으면 수사과장의 휴대폰으로 바로 신고해 달라"는 요청이다.

신동석 동작경찰서 수사과장이 은행 지점을 방문해 전달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예방 명함'. 정용환 기자

신동석 동작경찰서 수사과장이 은행 지점을 방문해 전달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예방 명함'. 정용환 기자

이를 위해 신동석 수사과장은 새 명함을 만들었다. 은행원들이 책상에 붙여 놓았다가 쉽게 신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신 과장은 "매일 2시간 정도를 투자해 관내의 90여개 지점 방문을 최근 다 마쳤다. 지난달에는 명함을 준 은행원이 제 번호로 신고 전화를 해서 1800만원의 피해가 생길 뻔한 보이스피싱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금 인출을 담당하는 은행원들이 관심을 가지면 보이스피싱 예방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 노량진역지점 관계자는 "은행원 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경찰서에서 방문해 보이스피싱 예방 협조 요청을 한 경우는 처음이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니 우리도 직원들에게 각별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송우영·정용환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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