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올바른 권력은 시대 소명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78호 01면

사법부의 심판은 준열(峻烈)했다. 법의 경계를 뛰어넘은 권력의 탈선과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사로이 사용한 죄에 무거운 책임을 지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국정 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규정하면서 검찰이 제기한 18개 혐의 중 16개를 유죄 또는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66세의 그에게 최순실씨보다 4년 많은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이 선고됐다. 헌정 사상 최초였던 대통령 파면의 정당성을 법적으로 추인한 셈이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 남용” #18개 혐의 중 16개 유죄로 인정 #‘박 없는 박 재판’ 아쉬움 크지만 #법원 판단 존중하는 게 법치주의 #닫힌 권력과 일방 통치는 위험 #현재·미래 권력은 거울 삼아야

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는  TV로 생중계된 재판에서 1심 판결 요지를 차분하게 읽어 내려가며 조목조목 불법 사항을 짚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 또는 자신을 위해 기업에 돈을 요구하고 받았다는 뇌물 혐의를 인정했다. 문화·예술·교육계 특정 인사들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권력을 남용했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김 부장판사는 “헌법상의 책임을 방기하고 국민으로부터 받은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눠줬으며, 권한을 남용해 기업 경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피고인석에 박 전 대통령은 없었다. 국선변호인 두 명만 자리를 지켰다. 이른바 ‘박근혜 없는 박근혜 재판’이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판결은 지극히 드물다. 이번 재판을 놓고도 정당한 법의 심판이라고 보는 시각과 오류와 편견에 사로잡힌 판결이라는 비판으로 여론이 갈려 있다. 재판 과정에 결함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법원이 구속 연장을 결정하자 재판을 보이콧했다. 1심 구속 기간(6개월)이 끝난 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진행하는 게 바람직했다는 의견은 법조계에서도 나왔다. 결국 역사적 재판의 법정에서 심판 받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떠나 반쪽재판, 정치재판, 여론재판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거부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용인되기 힘든 일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전직 국가원수가 국민이 위임한 사법권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몹시 실망스럽다”고 의견을 밝혔다. 재판 과정과 결과를 수긍하지 않는 국민도 일단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이 선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항소 절차를 밟으면 된다. 다시 재판이 열린다면 역사에 진실을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법정에 출석하기 바란다.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 있다. 전직 대통령 구속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느냐는 것이다.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드러난 2016년 말 각계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사퇴와 거국내각 구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을 제의했다. 탄핵-구속-재판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사태가 예견되던 때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화에 매달리다 기회를 놓쳤다. 당시 그 제안에 앞장섰던 송호근 서울대 석좌교수는 “통치 양식 자체가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고 본다. 잘못된 판단으로 이처럼 비감한 국면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사법처리는 ‘올바른 권력’의 필요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법과 제도 밖의 인물이 ‘비선’에서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되며, 절대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여론 수렴과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에 기반해야 한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선한 권력도 언제든 악의적 권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며 타락하기 쉬운 권력의 속성을 말했다. 이미 여러 차례 보고 겪었듯이 폐쇄적 권력과 일방적 통치의 끝은 비참하다. 전직 대통령 투옥 사태가 현재와 미래의 권력에 던지는 경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