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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 넘는다고 강제이별...농구팬들 "KBL은 코미디 리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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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공사 외국인선수 사이먼(가운데)이 덩크슛을 성공하고 있다. 사이먼은 키가 2m가 넘어서 다음시즌부터는 국내코트에 설 수 없게됐다. [사진 KBL]

인삼공사 외국인선수 사이먼(가운데)이 덩크슛을 성공하고 있다. 사이먼은 키가 2m가 넘어서 다음시즌부터는 국내코트에 설 수 없게됐다. [사진 KBL]

올 시즌 남자프로농구 득점 1위(평균 25.6점) 안양 KGC인삼공사 데이비드 사이먼은 농구팬들과 강제이별을 해야한다. 단지 키가 2m가 넘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남자프로농구 KBL은 2018-19시즌부터 외국인선수 신장 기준을 장신 선수는 2m 이하, 단신 선수는 1m86cm 이하로 제한했다. 올 시즌의 경우 장신 선수는 키 제한이 없었고, 단신 선수는 1m93cm 이하였다.

지난 2일 KBL센터에서 키를 재고 있는 사이먼. [연합뉴스]

지난 2일 KBL센터에서 키를 재고 있는 사이먼. [연합뉴스]

키가 203cm인 사이먼은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KBL 센터를 방문해 신장을 재측정했다. KBL 관계자 한 명이 키를 재고, 또 다른 한명은 무릎을 쭉 펴야한다며 무릎을 잡았다. 무릎수술을 받은적이 있는 사이먼은 무릎이 잘 펴지지 않으니 차라리 누워서 재게해달라고 요청했다. 1차 신장측정 결과 202.2cm가 나왔다.

많이 움직이면 신장이 작아질수도 있다는 말에 사이먼은 건물밖을 돌고 돌아와 다시 신장측정기에 올라갔지만, 2차 결과 202.1cm였다.

결국 2.1cm 차이로 국내무대를 떠나야하는 사이먼은 굉장히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인삼공사 선수들은 사이먼 이별선물로 금목걸이를 선물했고, 사이먼은 비록 목걸이의 길이가 짧지만 평생 간직하겠다고 했다.

전주 KCC 찰스 로드는 신장이 200.1cm다. 로드는 조만간 신장을 재측정하기로했다. [사진 KBL]

전주 KCC 찰스 로드는 신장이 200.1cm다. 로드는 조만간 신장을 재측정하기로했다. [사진 KBL]

원주DB 로드 벤슨(206.7cm)은 은퇴를 결심했고, 전주 KCC 찰스 로드(200.1cm)와 서울 SK 제임스 메이스(200.6cm)는 2m 커트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상황이다. 로드는 조만간 KBL센터를 방문해 신장을 재측정하기로했다.

비상 걸린 구단들은 단기간에 키줄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역기 같은 무거운 기구를 오래 들고 있다가 키를 재면 관절이 납작해져 신장이 작게 측정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KBL 관계자는 “단신 외국인선수들이 뛰면 경기 속도가 빨라져 평균득점이 올라가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농구 원년에 제럴드 워커(1m84cm), 2015~16시즌에 조 잭슨(1m80cm) 등 단신 외국인 선수들이 화려한 플레이를 펼쳤다.

KBL 관계자는 “2011~12시즌 자유계약 당시 외국인 선수의 평균신장이 2m7cm였다. 키가 큰 외국인 센터가 인사이드만 공략했다. 재미없는 농구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KBL은 센터를 비롯해 국내선수의 출전 비중을 60%로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이다.

조 잭슨은 2015-2016시즌 오리온 소속으로 단신인데도 화려한 플레이를 펼쳤다.[사진 KBL]

조 잭슨은 2015-2016시즌 오리온 소속으로 단신인데도 화려한 플레이를 펼쳤다.[사진 KBL]

하지만 농구계 반발이 거세다. 한 구단 관계자는 “새 외국인 선수를 찾을 때 줄자를 갖고 다니며 농구화를 벗긴 뒤 키를 재야 할 판이다. 연봉 상한선도 2명 합계 70만 달러(7억5000만원)인데, 2m가 안되는 빅맨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많은 농구팬들도 “한국프로농구에서는 미국프로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203cm·클리블랜드)도 못뛴다”, “리그명을 KBL(Korean Basketball League)에서 CBL(Comedy Basketball League)로 바꿔야할 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손대범 KBS N스포츠 해설위원은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필라델피아 벤 시몬스(2m8cm) 등 2m 넘는 가드와 3점슈터가 즐비하다. 사이먼은 키가 2m가 넘지만 ‘빅맨 테크니션’이다. 국내프로농구는 시대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며 “국내팬들은 애정을 준 사이먼과 생이별을 해야한다. KBL은 득점 때문에 인기가 떨어진게 아닌데,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월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대표팀 오세근이 슛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월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대표팀 오세근이 슛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농구대표팀과 월드컵에서 같은 조에 배속된 중국과 뉴질랜드에는 2m 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서 단신 외국인 선수만 상대하다보면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거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농구는 농구대잔치 시절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2017년 프로농구 시청률은 0.2%까지 추락, 프로배구(0.757%)의 3의1에도 못 미치고 있다. 평균관중은 2000명대로 떨어졌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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