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3일 소식을 4월5일에 전하는 北…"김정은이 가장 강한 운전대 틀어쥐었다”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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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엔 다소 뜬금없는 소식이 실렸다. 지난달 2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북한은 이 서신이 실제로 도착한지 13일만에 뒤늦게 보도했다. 5일 시점에 맞추어 보도해야 하는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노동신문 2018년 4월5일자 1면의 일부. 3월23일 시진핑 주석의 축전을 이날 보도했다. [노동신문 캡처]

노동신문 2018년 4월5일자 1면의 일부. 3월23일 시진핑 주석의 축전을 이날 보도했다. [노동신문 캡처]

 이 서신은 시 주석이 지난달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주석으로 재선출된 데 대해 김정은이 지난달 17일 보낸 축전에 대한 답신 성격이다. 노동신문도 ‘답전’이라고 표현했다. 김정은이 지난달 25~28일 중국을 깜짝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난 뒤 시점을 보다 이날을 골랐을 것으로 관측된다. 27일 판문점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과 5월로 거론되는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밀착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대남 및 대미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노동신문이 이날 공개한 시 주석의 답신은 “전통적인 중ㆍ조(북ㆍ중) 친선은 쌍방의 공동의 귀중한 재부(재산)”라며 “나는 중조 관계 발전을 고도로 중시하며 당신과 함께 전통적인 중조친선을 끊임없이 계승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비공개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은 부인 이설주와 함께 중국을 방문했으며, 북중정상회담과 연회 등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 CCTV]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비공개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은 부인 이설주와 함께 중국을 방문했으며, 북중정상회담과 연회 등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 CCTV]

 노동당 선전선동부 감독하에 제작되는 노동신문은 5일엔 작정한 듯 다각도의 친중 성향 기사를 쏟아냈다. 김일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를 병문안했던 일화까지 소개했다. 대대로 북ㆍ중 관계가 이어져 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시 주석이 산림녹화 사업을 지시했다는 내용과, 중국이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도 중국의 입장을 위주로 전했다.

 북한은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와도 본격 밀월 구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용호 외무상은 9~11일 러시아를 방문해 1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회담한다고 러시아 외교부가 4일(현지시간) 밝혔다. 김정은이 중국에 이어 러시아를 전격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도 크다. 남북 정상회담 이전엔 중국을, 북ㆍ미 정상회담 전엔 러시아를 방문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한국 정부엔 연이어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밤 늦게 ‘보수와 엉켜붙어 대결을 추구하는 진(짜)의도를 밝히라’는 제목으로 한국 정부에게 불만을 표했다. 5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의전ㆍ경호ㆍ보도 실무회담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천안함 폭침 희생자를 추모한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을 연이어 문제 삼고 나섰다. “남조선당국은 지금처럼 중대한 시기에 경망스럽게 놀다가는 큰 코를 다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는것이 좋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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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신문 5일자는 바통을 이어받아 “북남관계에서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시종일관한 자주통일 입장” 때문 이라며 김정은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나섰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의식한 듯 노동신문은 “남조선 및 세계 언론에서도 ‘(김정은이) 가장 강한 운전대를 틀어쥐고 정세 주도의 자신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운전자론의 주축은 한국 정부가 아닌 북한 당국이라고 강변하는 듯한 모양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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