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애써찾은 톨스토이 박물관 "수리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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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번 소련여행에서 가장 조심했던 것은 사진찍기였다. 소련측이 낸 여행안내서의 주의사항을 미리 읽은 탓이다. 노보스티통신이 발행한 이 안내서는 외국인들은 문화기념물, 도시의 거리, 광장, 보통건물, 극장, 박물관, 미술관을 촬영할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규칙을 잊지말라고 주의를 준다.
개인이 사진을 쓸 목적이면 허가되지만 상업적인 목적이면 촬영은 금지된다는 것이다. 상업 목적인 경우 반드시 소벡스포트필름사 (Sovexportfilm)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적관심없고 친절>
사진촬영 금지구역도 군사시설물과 무기등 군수품, 항만시설과 부두, 모든 교량, 터널, 라디오·TV등 방송 시설물과 공항 건물등 수없이 많다.
또한 소련영토 안에서는 기내촬영도 금지다. 각회사, 공장, 농장, 관공서등 공공건물 내부는 해당 관공서의 허가 없이는 촬영할수 없다. 특히 소련사람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사전에 동의를 얻어야 한다. 소련사람들은 외국인에 의해 사진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주의사항을 미리 읽었기 때문에 사진찍을 때마다 긴장되고 조심스러웠다.
지금 보도중인 사진들은 모두 규칙을 지켜 찍은 것들이다. 가끔 사진을 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 소련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10명중 9명은 거절했다. 안내서에서 읽은 그대로 소련사람들은 사진찍히는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친절하고 소박하며 솔직한 것 같았다. 그들은 사진찍히기를 거절한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듯 한결갈이 기자를 찍어주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길을 물어도 끝까지 목적지에 데려다줄만큼 친절했다.

<맥주한잔에 2불>
그리고 서구인들과는 달리 외국인들의 국적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체류한 기간에 단 한명도 『어디서왔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소련인들은 「하드 커런시」(Hard Curency)를 좋아한다. 소련에선 외화를 이렇게 부르며 「하드커런시」하면 주로 미화를 의미한다.
식당이나 카페 또는 기념품상점등은 외국인 전용인 경우 영어로 「하드 커런시」라는 팻말을 걸어놓는다. 이 경우 외국인전용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을 이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서비스가 빠르고 친절한 탓일 것이다. 기자도 코피는 주로 외국인 전용 바에서 마셨다. 코피 한잔에 1달러, 주스등 음료수도 모두 1달러였다.
그러나 맥주는 한잔에 2달러였다. 소련정부는 노동자와 농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술끊기를 권장중이다. 술 공급량을 30%나 줄였기 때문에 술가게 앞은 긴 행렬을 이룬다. 이 정책은 가정주부들의 큰 환영을 받았으나 술값을 올려 놓았다고 한다.
「하드 커런시」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은 택시기사들이다. 모스크바에 1만8천여대의 택시가 있다고 하나 호텔 앞에서 택시잡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인투리스트를 찾아가 영어가 통하는 기사가 딸린 차량 전세를 신청했다.
그러나 기사는 영어를 전혀모르니 영어 안내원을 따로 신청하라고 했다. 차량 전세는 1시간에 9.5루블, 한화로 1만4천원이니 생각보다 비쌌다. 주저하는 기자를 보고 직원이 호텔 앞의 리무진 택시를 활용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일러준다.
호텔 앞에는 항상 20여대의 낡은 리무진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한번 타는데 5루블 (9달러), 1시간 전세에 13루블인데 「하드 커런시」를 요구한다.
일반택시는 기본요금 (1㎞)30코펙스로 상당히 먼거리를 가도 1루블 안팎이니 리무진이 턱없이 비싼 셈이다. 그런데 리무진 기사들은 때때로 5루블 대신 미국담배 한갑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다. 호텔안 바에서 말버로등 양담배 한갑에 2달러다. 기자는 10갑을 사놓고 차탈 때마다 1갑을 차비대신 주었다. 기사는 그때마다『OK』하며 만족해 했는데 이때문에 교통비를 크게 절감할수 있었다.

<한사람놓고 설명>
5월16일 오후 리무진 택시를 타고 푸슈킨미술관, 트레티야코프 갤러리, 톨스토이박물관등을 약2시간 돌아보았다. 2시간 전세에 「하드 커런시」40달러를 지불했다. 먼저 푸슈킨미술관에갔다. 볼크혼카로 12번지에 있는 이 미술관은 아담한 정원 속에 장대한 대리석 건물로 대문에 노어와 영어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서방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명소이기에 영어표시가 있는 것 같다. 1912년에 준공된 이 미술관은 그리스풍의 원주가 웅장한, 레닌그라드의 헤르미타주미술관 다음으로 큰 소련 제2의 미술관이라고 한다.
상형문자등 고대 이집트문명의 유물들,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들, 화산 폭발로 멸망한 폼페이의 벽화들, 비잔틴의 성화들, 고대로마의 지하 공동묘지 벽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티첼리」「페루긴」등 16세기 서구작가들의 유화들, 18∼19세기 영국·스페인·독일작가들의 인물화와 풍경화들도 전시되어 있었고, 특히 프랑스의 바르비종파와 인상파 그림들이많았다. 「푸생」「코로」「쿠르베」「샤르댕」「세잔」「르누아르」「모네」「피사로」「피카소」까지 총망라, 마치 파리의 루브르미술관 축소판 같았다.
톨스토이박물관은 푸슈킨미술관메서 불과 2백50여m의 가까운 곳에 있었다. 톨스토이박물관은 모스크바 남쪽 2백㎞ 지점인 야스나야 포리야나에도 있다. 『안나 카레니나』『전쟁과평화』등 불후의 명작을 쓴 「톨스토이」의 대저택은 1921년에 톨스토이문학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으나 시간때문에 단념하고 모스크바 시내의 박물관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리중이었다. 한 직원이 나와 한국에서 찾아온 이방인을 위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이 박물관은「톨스토이」사망 1주기를 기념하여 1911년에 문을 열었다. 1939년 소련정부는 이 문호의 작품들과 일생을 집약할만한 원고와 소장품을 모두 모아 상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이 박물관은 16만장의 원고와 1만통의 편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때문에 세계도처에서 「톨스토이」연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직원은 멀지않은 곳에1882∼1901년간 「톨스토이」가 겨울을 나면서 『복활』등을 집필한 집이 있다고 가르쳐주었으나 시간상 가보지못했다.
모스크바강에서 가까운 라브루친스키로에 붉은 벽돌과 흰색 벽돌을 섞어 쌓아올리고 지붕이 모두 유리로 된 러시아풍의 건물, 이것이 러시아예술의총본산인 트레티야코프 갤러리였다. 5백여점의 유화, 3천여점의 성화, 1천여점의 조각, 3만3천여점의 스케치와 판화등을 상시 전시하는 이 미술관은 관광객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붐비고 있었다.

<"레닌그라드로">
1852년 당대의 러시아 그림 수집광 「파벨·트레티야코프」형제가 세운 이 갤러리는 지난 5월하순 미소정상회담때 「레이건」대통령부인 「낸시」여사도 들러보았던 러시아 예술품 전용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1892년 모스크바시에 기증되었다가 1918년 여름 국유화되었다.
11∼12세기의 화려한 모자이크화들, 모스크바와 노프고로드지방의 성화들, 15세기 최대의화가 「루브레프」의 『삼위일체』, 18세기 「안트로포프」작 『피터3세』등은 러시아 고전미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19세기 「이바노프」작 『예수의 강림』은 소련사람들이 「레오나르도·다·빈치」와 견주어 자랑할만한 탁월한 작품이었다.
특히 러시아 미술계의 「톨스토이」라 불리는 「일랴·레핀」의 대작 『볼가강의 뱃사공들』은 같은 제목의 러시아 민요를 연상시킬만큼 감동을 주었다.「세로프」의 「체호프」「고리키」「차리아핀」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초상화도 「고흐」의 『자화상』이나「로댕」의 『발자크상』과 비견할만한 대작들이었다.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산보한것은 5월17일 밤 10시30분쯤부터다. 모스크바의 샹젤리제라는 고리키로는 인파로 가득차 활기가 넘쳐흘렀다. 외로운 이방인으로 보트카 한잔이 간절했다. 카페의 문을 두드렸으나 헛수고였다. 국영인 카페나 술집은 관광호텔의 나이트클럽을 제외하고 모두 밤10시면 일제히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푸슈킨광장과 마야코프스키광장을 산보하면서 사진찍기에 열중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인투리스트에서 보낸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다. 『18일까지 레닌그라드 여행수속을 끝마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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