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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정치] 미 핵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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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0일 오전 11시30분. 부산에서 동남쪽으로 222km 떨어진 공해상에 한 점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CVN-72)이지요. 저기에 어떻게 비행기가 내릴까. 덜컥 겁이 났습니다. 기자를 태운 20인승 미군 수송기 C-2A 그레이하운드는 함상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고 항모와 나란히 방향을 잡았어요. 얼마 후 C-2A의 바퀴가 활주로에'드르륵'하고 닿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 떴습니다. 아뿔싸, 1차 착륙에 실패한 겁니다. 순간 아찔했습니다. 항공기 꽁무니의 갈고리가 활주로 바닥에 깔린 강철 로프에 걸리지 않았던 거래요. 이 로프는 항모의 활주로가 짧아 200㎞ 이상의 속도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바다에 떨어지지 않도록 한대요. 간혹 착륙에 실패해 비행기가 바다에 빠진 적도 있답니다.

공중을 선회한 수송기는 두 번 만에 착륙에 성공했습니다. 비행기 밖으로 나와 보니 링컨호는 거대 기지였어요. 몸을 날려버릴 기세로 바람이 불고 있더군요. 항모가 시속 30노트로 빠르게 항해하고 있어서지요. 최신예 F/A-18 호넷 전투기와 EA-6B 프롤러 전자전 전투기가 꽁무니에 빨간 불을 내뿜으며 연방 뜨고 내렸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에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좁은 통로를 따라 항모 오른쪽에 우뚝 솟은 구조물(아일랜드) 7층의 함교로 가자 함장 앤드루 매콜리 대령이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함교는 항모를 운항하는 지휘부가 있는 곳이죠. 항모 전체가 훤히 내려다 보였습니다. 다시 계단을 타고 8개 층을 내려가자 날개를 접은 호넷 전투기를 비롯한 함재기(항공모함에 실린 비행기) 수십 대가 있는 격납고가 나왔습니다.

링컨호는 한꺼번에 85대의 전투기를 실을 수 있는데 이번에는 70여 대를 싣고 왔대요. F/A-18기, EA-6B기 외에 E-2C 공중조기경보기, SH-60 대잠헬기도 탑재하고 있었어요. EA-6B는 전자파를 쏴 지상에 있는 적의 대공미사일과 레이더를 무용지물로 만든대요. E-2C는 공중에서 함재기들을 지휘하지요.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지스함급 순양함 1척과 구축함 2척, 핵 잠수함 2척, 보급함 2척 등으로 구성된 항모 타격단이 함께 다닙니다. 엄청난 전력(戰力)이지요. 함재기는 이륙할 때 활주로 바닥에 있는 캐터펄트라는 스팀 압력 장치를 이용합니다. 항공기를 1~2초 만에 시속 300㎞의 속도로 공중으로 내던지는 것이지요. 링컨호는 4개의 캐터펄트로 1분에 최대 4대씩 이륙시킨다고 해요.

링컨호 참모장 로스 대령은 "링컨호는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다"고 자랑하더군요. 한 번 출항하면 3개월 동안 재보급을 받지 않고 5600여 명을 하루에 4끼씩 먹여 살릴 수 있대요. 바닷물을 증류해 하루에 1500t의 물을 만들어 사용하지요. 장병은 항모 안에서 휴가를 가기도 한답니다. 3개의 수술실에 8명의 의사가 상주하며 하루 70명의 치과 환자를 치료한다고 하네요. 2개의 가압경수로형 원자로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10만 명 규모의 도시에 불을 밝힐 수 있답니다. 그래서 건조에만 4조5000억원이 들고 유지비만 연간 5000억원이 들어간대요. 어때요. 입이 다물어지지 않죠.

링컨호는 24일 부산 근해에 도착했습니다.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연습에 참가하기 위해서지요. 한국 방문은 처음이래요. 2월 27일 모항인 미국 워싱턴주 에브렛 기지를 떠난 지 20여 일 만입니다. 오는 도중 하와이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했답니다. 물속에 있는 잠수함을 귀신같이 찾아내 공격하는 훈련이래요. 일본 근해에선 해상자위대의 콩고급 이지스함 가리시마 등 함정과 '패섹스'라는 해상훈련도 했답니다.

이 항모는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을 그대로 땄습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에서 오게 돼 있는 5척의 항모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번엔 대표로 미 본토의 기지에서 한국으로 직접 전개하는 연습을 한 셈이죠.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국의 전략에 따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군 전력을 한반도로 모아 훈련하는 것이지요. 링컨호는 2003년 봄 이라크전쟁에 참전해 10개월 동안 전투기를 1만6500회 출격시켰답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 항모에서 이라크 전쟁 종전을 선언해 더 유명해졌어요.

에이브러햄 링컨호=김민석 군사전문기자

'RSOI' 연습은 북 남침에 대비한 한.미 방어 훈련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은 북한의 전면 남침에 대비한 한국과 미국의 방어 훈련입니다. 6.25전쟁처럼 북한군이 남침하면 미국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한국에 신속히 군대를 지원토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유사시에 대비한 부대 병력과 장비가 전부 한국에 오면 비용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지휘부만 참가합니다. 소수 정예로 하는 것이죠.

RSOI란 미군이 한국에 도착하면 ▶접수(Reception)한 뒤▶다른 병력이 올 때까지 대기(Staging)하고▶임무 지역으로 이동(Onward and movement)하며▶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 현지 부대와 통합(Integration)하는 4단계의 절차를 말합니다. 이처럼 과정이 복잡한 데다 미군 장병들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매년 연습합니다. 3월 25~31일 실시된 이번 연습에는 미군 2만5000명이 참가했습니다. 미군의 신형 군사장비도 선을 보였지요.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타격단과 시속 77㎞로 항해하는 고속수송함(HSV:High Speed Vessel) 2척, 스트라이커 소대, 특수전기 MC-130 등 입니다. 이번엔 한.미 해병부대가 처음으로 서해안에서 상륙훈련을 했습니다. 링컨호가 와서 그런지 북한은 전례없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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