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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미 FTA 협상 봉합했다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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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으로 불거진 한·미 양국의 통상 갈등이 일단 봉합되는 분위기다. 미국의 철강 관세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연계한 양국 협상이 지난 주말 사실상 타결됐다. 한국의 민감 부문인 농업의 추가 개방은 없고, 기존 FTA의 양허안은 유지됐다. 한국산 철강에 대한 25%의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올해 대미 철강 수출물량은 쿼터를 적용해 지난해의 74% 수준으로 줄였다. 미국의 가장 큰 불만사항이었던 자동차 부문에서 한국이 양보했다. 한국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 쿼터를 2배 늘려 주고,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 시기도 20년 늦춰 줬다.

한국이 얻은 것은 대미 수출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조기에 없앴다는 점이다. 당초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됐던 FTA 협상이 석 달 만에 큰 틀의 합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현종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꿀릴 게 없는 협상판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놓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현 정권이 야당 시절 비판했던 2010년 재협상 협정문보다 한국이 훨씬 불리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철강 쿼터로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강관류업계는 당장 피해가 예상되고 생산·수출 감소로 힘겨워하는 국내 자동차업계에도 중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정치적 계산 대신 냉정하게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도 대미 무역 흑자 폭이 큰 한국은 언제든지 미국의 타깃이 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고조되면 한국이 직격탄을 맞기 십상이다. 이미 미·중 물밑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에 한국산 대신 미국산 반도체를 수입하라고 압박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언제 어디서 유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세상이다. 통상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부는 더 긴장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