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노키 유물은 한국서 건너간 것"|내한한 제일사학자 이진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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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일사학자 이진희씨(60)가 일본후지노키(등노목) 고분과 관련된 연구·조사를 위해 14일 내한했다. 이씨는 공주·부여등지를 둘러보고 이 지역 유물과 후지노키와의 연관을 살려볼 예정. 후지노키 고분발굴을 살펴보고 파이버 스코프를 통해 촬영한 유물사진을 검토한 이씨로부터 후지노키 유물의 성격에 대해 들어본다.
-일본일부학자들은 지난2일 촬영된 하트형장식이 있는 물체를 금동관이 아니고 지팡이 장식같다고 했는데….
『일본동해대 정보처리센터에서 촬영한 사진을 검토, 분석한 것을 보았는데 의심의 여지없는 금동관입니다. 관모에 금실로 달아맨 요령이 4∼5군데 보이고 있으며 두께2∼3mm정도의 꼬아놓은 쇠사슬 같은 모양의 것도 보였습니다. 또 발견된 위치도 관속의 머리부분이었습니다.』
-마패등 유물이 백제 것이냐, 신라 것이냐의 논란에 대한 견해는.
『백제 것이냐, 신라 것이냐 하는 논의에 큰 비중을 두지 말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당시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비슷하리라 봅니다. 그보다는 무령왕릉·안압지등의 발굴성과로 일본에서 후지노키 유물이 한국에서 건너간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에서는 다카마쓰즈카(고송총) 벽화 때처럼 가능한한 한국의 영향을 배제하고 중국과 연결된 것으로 우기려는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유물에 대한 개인적 의견은 어떻습니까.
『백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발굴된 마구에는 5각형의 귀갑무늬가 나타나고 그 속에 봉황·코끼리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귀갑무늬는 백제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무령왕릉 유물중 칼손잡이·왕비베개·왕다리받침 등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속에 그려진 그림도 신라 것은 추상화된 것이 많은데 백제 것은 리얼하게 그려지며 이번 후지노키 것도 백제목에 가깝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까?
『501년부터 554년 사이, 즉 백제무령왕∼성왕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제는 513년 오경박사를 일본으로 보내 한문을 본격적으로 알리고 일본고대국가의 질서를 세우는데 기여합니다. 또 538년에는 불전을 전하지요.』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일지요.
『「소가이나메」(소아도목·?∼570)라고 보는 입장이 유력합니다. 그의 아들 「소가우마코」(소아마자·?∼626)의 무덤인 석무대 고분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소가」가는 5세기말에서 6세기에 걸쳐 큰 세력을 이루었던 백제에서 건너간 일족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명문이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0월께의 석관개봉이 기대됩니다.』
-일본고대사를 바꿀 수 있는 결과가 나오리라고 보십니까.
『그런 종류의 명문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후지노키 고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6세기중엽의 백제문화가 국내에서의 발굴성과가 없어 공백으로 놓여있었는데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남아있어 그 실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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