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없이 공수표만 남발한 한국 미래차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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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시험중인 자율주행차. [사진 네이버]

네이버가 시험중인 자율주행차. [사진 네이버]

자동차 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총생산액(197조원·2016년)은 국가 제조업의 13.9%를 차지한다. 부가가치액(57조원)으로 봐도 비중(11.2%)이 높다. 한국 일자리 10개 중 1개(37만 명·9.1%)는 자동차 산업과 관련이 있다. 주요 산업 중 취업유발계수(매출액 10억원당 8.6명)도 가장 높다.

미래차 전략 부재한 한국 #구체적 계획 여전히 없어 #거창한 보급대수만 제시

이처럼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신성장연구실 연구위원은 “국내 자동차 기업의 기술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글로벌 경쟁 기업 대비 낮은 편이며, 국가 차원의 미래 자동차 기술력 수준도 선진국 대비 다소 약세”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GM이 철수하면 일자리가 9만4000여 개 감소하고 부가가치가 8조4000억원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텅빈 공공기관 주차장. 송봉근 기자.

텅빈 공공기관 주차장. 송봉근 기자.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다른 국가보다 선제적으로 미래차 산업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한국은 2006년 ‘환경친화적자동차 개발 및 보급 계획’을 수립했다. 시점으로만 보면 영국이 본격적으로 미래차 산업을 준비한 2009년보다 3년이나 빠르다. 이후 한국은 5년 단위로 계획을 보완하면서 미래차 시장을 준비했다.

하지만 알맹이를 뜯어보면 12년 동안 골자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미래차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보급’하는 것에 무게 중심이 쏠린 것도 똑같다.

영국이 미래차 전략을 본격 추진한 시점과 거의 비슷한 2009년 12월 한국 정부가 내놓은 전략을 봐도 마찬가지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환경친화적 보급계획에 따르면 하이브리드카·천연가스자동차를 보급하기 위해 국고를 투입하고 세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거의 전부다. 전기차나 수소차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수소전기하우스. [중앙DB]

서울 여의도 수소전기하우스. [중앙DB]

영국 정부가 친환경차 기술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한국은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하이브리드카·전기차 등 배기가스를 덜 내뿜는 차량을 보다 많이 도입하는 게 목적이다 보니, 친환경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근본적인 기술을 확보하는 것보다,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는데 돈을 투입한 것이다.
그나마 계획했던 목표도 못 지켰다. 정부는 1차 기본계획에서 ‘2010년 세계 4대 자동차 강국’을 선언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또 2015년 발표한 3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까지 전기차 4만6000대와 수소차 500대 보급을 공언했다. 실제 목표 달성률은 35(수소차·177대)~54%(전기차·2만5000여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 35만대, 수소차 1만5000대를 보급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다시 내놨다. 지금 상황에선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장희주 환경부 대기환경과 주무관은 “올해 전기차 보급 예산으로 3760여억원을 신청했지만, 2560여억원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며 “목표 보급대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미래차 전략을 내놓은 건 지난 2월이다.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미래차 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알맹이가 빠진 건 마찬가지다. 구체적 계획이라기보다 비전을 제시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내놓은 미래차 전략도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고 기술력을 확보하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미래차 산업 자체를 육성하기보다는, 단순히 일자리 창출의 수단으로 미래차를 지원한다는 인식을 내포한다. 정부의 미래차 산업 발전 전략은 ‘미래차 시대에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견인차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가 ‘일자리 상황판’까지 내걸며 일자리 창출에 나선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자동차 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자동차와 충전소 인프라 보급은 환경부가, 차량 운행 안전기준 제정 등은 국토교통부가 맡고 있다. 업무는 분산했지만 관계부처가 정책 발전을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자리조차 없다. 유관 부처 관계자는 “미래차 관련 정례모임은 없다”고 털어놨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래차 기술 발전에 투자하면 소비자들이 미래차를 선택해 시장이 커지지만, 단순히 보조금에 의존한 정책은 보조금을 투자한 수준에서 수요가 증가하는 데 그친다. 이렇게 되면 정책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고,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희철·김도년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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