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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m 옆건물 갔는데 '출장'···용돈처럼 세금 쓴 공무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옆 건물로 출장 가고 식비 부풀리고... 세금이 공무원 쌈짓돈  

인천 중구청(왼쪽)은 본관 건물과 중구의회(오른쪽 대리석 건물)가 나란히 있다. 임명수 기자

인천 중구청(왼쪽)은 본관 건물과 중구의회(오른쪽 대리석 건물)가 나란히 있다. 임명수 기자

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일부 공무원들이 세금을 자신들의 쌈짓돈으로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구청 직원이 바로 옆 구 의회 건물을 다녀온 뒤 출장 처리하거나 일이 끝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며 영수증을 허위 처리하는 식으로 수당을 챙겼다.

인천 중구 직원 상당수 관행적 출장 달고 수당 챙겨 #"구청 옆 의회 건물로 50m 거리 출장 갔다" 보고 #영업 끝난 식당서 저녁 먹었다며 특근매식비도 수령 #시민단체 문제제기하자 일부 직원 및 부서는 반납 #인천 남구·동구, 서울 강남구·마포구도 비슷한 사례

20일 민간 비영리 단체(NGO) 주민참여에 따르면 인천시 중구청 4개 부서와 2개 동사무소 직원들은 지난해 하반기 6개월 동안 출장 수당 및 특근매식비(야근 시 먹는 저녁 식비) 명목으로 500여만 원을 부정으로 수급했다. 시민단체가 제보를 받고 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를 검토한 결과다.

해당 공무원들은 시(특별·광역시 포함)·군·구청 공무원이 지역 내 출장을 갈 경우 공무원 여비규정에 따라 4시간 이내면 1만원, 4시간 이상인 경우 2만원의 경비를 지급한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이렇게 모은 출장비는 부서 점심이나 회식비 등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시민단체 설명이다.

인천 중구청 한 직원이 의회를 다녀오면서 출장을 단 기록. [사진 주민참여]

인천 중구청 한 직원이 의회를 다녀오면서 출장을 단 기록. [사진 주민참여]

실제 중구청 건축과 직원 A씨는 2017년 11월 초 구청 바로 옆 건물인 중구 의회 회의에 참석하면서 1시간짜리 출장을 신고해 1만원을 받았다. B동사무소 직원 C씨도 100m 앞 주민센터를 가면서 1시간 출장을 달고 다녀왔다.

건설과 한 여직원은 지난해 9월 한 달 중 ‘사무실 용품구매’ 목적으로 14회의 출장(1시간짜리)을 다녀왔다.  총무과 D씨는 지난해 9월 13회, E씨는 같은 해 12월 11회의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돼 있다. 이들의 출장 목적은 ‘국제교류 업무추진’ ‘자료수집’ 등 모호한 명목을 달거나 아예 목적지를 기록하지 않았다.

인천시 중구청 한 직원이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근무일수 21일 동안 16회의 출장을 다녀온 기록. [사진 주민참여]

인천시 중구청 한 직원이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근무일수 21일 동안 16회의 출장을 다녀온 기록. [사진 주민참여]

중구청 공무원들의 예산 유용은 또 있다. 건축과 직원 20여 명은 지난해 1월~10월까지 10개월 동안 구청 인근 J식당에서 특근매식비(야근 때 먹은 밥값) 명목으로 190여만 원을 영수증 처리했다. 건설과 직원들도 같은 기간 식당에서 80여만원어치의 밥을 먹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이 식당은 낮 장사만 하고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인천시 중구청 한 직원은 9월 한 달 동안 근무일수 21일 중 출장일수가 16일이나 된다. [사진 주민참여]

인천시 중구청 한 직원은 9월 한 달 동안 근무일수 21일 중 출장일수가 16일이나 된다. [사진 주민참여]

식비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었다. 총무과 직원들은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구청 인근 Z 한식 뷔페에서 95만원의 특근매식비를 사용했다. 회계장부에 1인당 7000원으로 적었다. 하지만 이 뷔페는 낮에만 문을 열고, 가격도 6000원 단일가다.

인천지역 타 구청에서도 비슷한 정황이 나타났다. 인천 남구청 주안4동 여직원은 지난해 3월 한 달 동안 11회의 출장을 다녀왔다고 적었다. 동구청 총무과 한 직원은 2017년 3월에만 4시간짜리 출장을 15회나 다녀왔다고 기록했다. 출장 목적은 ‘물품구매’과 ‘자료수집’이었다.

인천 남구청 직원의 출장기록. [사진 주민참여]

인천 남구청 직원의 출장기록. [사진 주민참여]

서울지역 구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청 한 부서는 구내식당 한 끼 식사비용이 3500원인데 7000원으로 처리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또 의회 사무국의 한 직원은 시민단체와 면담하는 시간에 1시간짜리 출장이 달린 것이 확인됐다. 강남구청은 지난해 말 공보실 직원 전체가 15일 동안 매번 2만원(4시간 이상)짜리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돼 있다.

주민참여 측은 수당 및 특근매식비 부정수급이 해당 지자체 전 부서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관련 기록 모두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주민참여 최동길 대표는 “이런 세금 착복이 지속적·관행적으로 이뤄졌다면 구청당 연간 10억원이 낭비됐을 것”이라며 “노조 간부와 감사과 출신 직원도 허위 출장을 다녀왔는데 감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직원과 부서는 수당과 매식비를 반납하기도 했다”며 “일탈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된 직원에 대해서는 지난달 말 검찰에 고발했다”고 덧붙였다.

인천 남구청 직원의 출장기록. [사진 주민참여]

인천 남구청 직원의 출장기록. [사진 주민참여]

이에 대해 중구청 한영대 총무과장은 “일부 직원은 잘못을 인정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명목을 제대로 적지 못했을 뿐”이라며 “식대도 기록 잘못이지 허위는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건축과는 “실수였다”며 특근매식비 190여만원을, 건설과 여직원은 받은 수당을 모두 반납했다.

홍보실 관계자는 “의회에 출장을 달고, 같은 항목으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통상 대충 적다 보니 그런 것이지 허위로 적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구청 기획감사실 관계자는 “지난해 제보를 받았지만, 감사인력이 없어 지난달 중순부터 점검을 시작했다”며 “일부 사실이 확인돼 반납을 받은 사례도 있고, 현재 계속해서 점검 중이라 더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감사담당관실은 “요즘에도 그런 일을 벌이는 공무원이 있느냐. 신뢰를 저버리는 창피한 일”이라며 “사실 여부를 확인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환수 조치는 물론 징계처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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