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러 '노비촉' 대충돌…"14일까지 배후 밝혀라" 메이, 푸틴에 최후통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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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위기 치닫는 영·러…영국, 외교관 추방·금융제재 검토 

전직 러시아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을 계기로 영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정면 충돌로 치닫고 있다. 이들을 공격하는 데 쓰인 물질이 러시아가 군사용으로 개발한 치명적 화학무기로 드러났다며 영국 정부가 추가 대러 제재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 "스파이 부녀 공격에 러 개발 화학무기 사용" #14일까지 합당한 설명 없으면 돈줄 죄는 제재 경고 #FT "외교관 추방, 러시아 은행 규제, 비자 몰수 등 가능" #美·EU 등 동맹국 동참이 변수…러 "서커스 쇼" 반박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2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이중스파이 부녀 공격에 쓰인 신경작용제가 러시아에서 군용으로 제작된 노비촉이라고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2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이중스파이 부녀 공격에 쓰인 신경작용제가 러시아에서 군용으로 제작된 노비촉이라고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2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이번 사건에 사용된 신경작용제가 1970~80년대 러시아에서 개발된 ‘노비촉(Novichok)’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정부가 직접 이를 사용했거나, 남의 손에 들어가도록 관리에 실패했을 가능성만 있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는 14일까지 러시아 정부가 신뢰할 만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러시아가 영국 영토에서 불법 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영국은 동맹국들과 러시아 경제에 강력한 제재를 이끌어 왔는데, 좀 더 강한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며 의회와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앞서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전직 러시아 스파이와 딸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사건에 사용된 화학무기를 조사 중인 영국 경찰. [EPA=연합뉴스]

전직 러시아 스파이와 딸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사건에 사용된 화학무기를 조사 중인 영국 경찰. [EPA=연합뉴스]

 노비촉은 시리아에서 정부군이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은 사린가스나 김정남 암살에 쓰인 VX 신경작용제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독성은 훨씬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게리 스테판스 리딩대 교수는 “VX의 5~8배 정도 독성이 강한 노비촉은 심장박동을 느리게 하고 기도를 막는다"며 “노비촉은 식별하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기한 내 배후 관련 발표를 하지 않으면 영국 정부는 러시아 외교관 추방, 권리 남용으로 기소된 러시아인의 영국 내 자산 동결, 러시아 은행에 대한 단속, 러시아 월드컵 불참 운동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이를 위해선 미국과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제재 동참이 중요하다. 국립 왕립국제문제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 전문가 마티유 블레게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시대이고 미국도 러시아와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얼마나 영국이 서방 각국의 지원을 받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전직 러시아 스파이가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지역에서 영국 경찰이 만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도로를 막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직 러시아 스파이가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지역에서 영국 경찰이 만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도로를 막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협약 4항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한 회원국이 독립이나 안보를 위협받았다고 느끼면 다른 회원국과 협의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또 메이 총리는 미국과 비슷하게 권리 남용으로 기소된 러시아인의 비자를 몰수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법안을 만들 수도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러시아 고위 관료나 친 크렘린궁 성향의 기업인들이 영국 내 부동산이나 기타 자산을 보유하고 런던과 모스크바를 오가는 게 어려워질 전망이다. 펀드 매니저 빌브 라우더는 “영국 입장에서 최대 지렛대는 러시아의 자금"이라며 "그래야 러시아에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는 러시아 회사들의 영국 내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방안도 사용할 수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경제제재에 따라 러시아의 대형국책은행 두 곳의 런던 내 사업은 축소됐다. 추가적인 은행에 대한 제재는 다른 러시아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곡물센터를 찾은 자리에서 영국 정부가 이번 사건의 진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BBC가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메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서커스 쇼"라고 반박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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