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잠겼다” “고양이 구해달라” … 119 출동 안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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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월 30일 오후 11시14분쯤 경기도의 한 소방서 119안전센터. “물이 곳곳에서 흐른다”는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관 3~4명이 펌프차를 몰고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사고가 아닌 단순 수도관 동파였다. 큰 피해도 없었다. 그 사이 소방서엔 진짜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 소방관들이 급하게 현장으로 이동했지만, 예상 출동 시간을 한참 넘긴 뒤였다.

경기도, 전국서 최초 출동기준 마련 #긴급-잠재적 긴급 상황만 현장 출동

이 소방서 관계자는 “안전센터엔 펌프차와 구급차가 각 1대씩만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단순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실제 사고 현장에 뒤늦게 출동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앞으로 경기도에선 집 문이 잠겼다거나 고양이를 구해달라는 등의 단순 민원에는 소방관이 출동하지 않는다. 경기도 재난안전본부는 이같은 내용의 ‘생활안전분야 요청사항 출동기준’을 마련해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12일 밝혔다. 119 재난종합지휘센터가 접수된 신고 내용의 위험 정도를 긴급, 잠재적 긴급, 비 긴급 등 3가지로 판단해 상황에 따라 소방관의 출동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맹견이나 멧돼지·뱀 등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동물이 주택가에 나타나면 소방서에서 출동한다. 하지만 너구리나 고라니, 고양이가 농수로에 빠지는 등 긴급하지 않은 상황은 각 시·군이나 민간단체 등에 통보해 처리케 한다.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 처리도 마찬가지다. 벌집이나 고드름 제거도 위험하지 않은 경우는 의용소방대나 유관기관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현관문이 잠겼으니 열어달라”는 요청도 단순하게 문이 잠긴 경우는 민원인이 알아서 대처하도록 할 예정이다. 다만 화재 사고나 거주자의 신변 확인이 필요한 긴급 상황은 소방관이 직접 출동한다.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등 신고 내용만으로 위험 정도가 판단되지 않을 경우도 소방관이 담당한다. 도 재난안전본부는 이밖에 전기·가스·낙석·폭발물·도로·가뭄 등 상황별 출동 기준도 정했다. 전국에서 처음이다.

사실 현행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방관은 긴급 상황이 아니면 민원인의 출동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각종 항의가 쏟아진다. 한 소방관은 “출동할 때까지 계속 연락해 욕설하거나 상급 기관에 악의적인 민원을 넣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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