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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아이콘 소지섭 “서로만 바라보는 사랑, 아프고도 행복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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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배우 소지섭. [사진 51K]

배우 소지섭. [사진 51K]

성큼성큼 걸어올 땐 단단한 벽처럼 커 보였다. 다가와 앉자 모자챙에 가렸던 얼굴이 드러난다. 장난스레 미소 짓는 갸름한 눈매가 어쩐지 수줍다. 데뷔 21년 차, 나이로 마흔이 넘은 배우에게 예상치 못했던 인상이다. 14일 개봉하는 순정파 멜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의 주연배우 소지섭(41)이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주연 #환생한 아내와 새로운 사랑 #“아빠 역할 서툴러 처음엔 거절”

개봉에 앞서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이번 영화의 출연 결정 이후, 오래전 봤던 일본영화를 다시 꺼내 보고 “또 울었다”고 했다. “슬픈 내용이지만, 동화 같은 따뜻함이 좋았어요.” 2004년 일본 영화로 만들어졌던 원작은 작가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 소설. 일본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소지섭이 연기하는 우진은 죽은 지 1년 만에 기억을 잃은 채 돌아온 아내 수아(손예진 분)와 다시 사랑에 빠지는 남자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아빠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아내가 죽고 아들 지호(김지환 분)를 홀로 키운 지 1년이 됐건만 우진은 여전히 달걀프라이를 태울 만큼 살림에 서툴다. 소지섭은 “아이 아빠처럼 보일지, 상상이 안 돼 처음엔 출연을 거절했다”고 했다. 마음을 돌리게 된 건 우진과 수아의 순애보 때문이다. “둘 다 서로밖에 없고, 서로만 바라봐요. 현실에선 진짜 힘든 일이잖아요.”

그동안 소지섭이 연기해온 캐릭터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의 불우한 입양아 차무혁부터 영화 ‘군함도’(2017)에서 일제에 맨몸으로 맞서는 조선인 최칠성까지, 혹독한 삶 속에서도 기어코 사랑을 지켜내는 강한 남자였다. 우진은 결이 조금 다르다. 사랑 앞에 서툴고 머뭇댄다.

일본 소설이 원작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일본 소설이 원작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지섭은 “촬영하며 우진과 닮았다고 느낀 부분”을 이렇게 전했다. “부족하고 재미없고 엉성한 게 닮았어요(웃음). 안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만, 20대 때도 우진처럼 어수룩했어요. 손 한번 잡는 것도 고민했던 고교 시절 첫사랑도 떠올랐죠.”

극 중에서 다시 뭉친 세 식구가 티격태격하면서도 행복을 느끼는 현재의 장면이 유쾌하다가도 가슴을 울린다면, 과거 회상 장면에는 풋사랑의 설렘이 가득하다. 소지섭과 손예진이 20대 과거 모습부터 부모가 된 현재 모습까지 모두 연기했다.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 남매로 출연했던 두 사람이 다시 같은 작품에서 만난 건 17년 만이다. 소지섭은 “20대 외모는 후반 작업에 맡기고 매 장면 감정에 충실했다”며 “‘멜로퀸’ 예진씨에게 기댄 부분이 있다”고 했다. 손예진은 같은 장면도 여러 감정으로 거듭 찍으며 감정 연기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영화 분위기는 정적이었던 일본판에 비해 밝은 편이다. 돌아온 수아가 전과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이나 우진과 단짝인 괴짜 홍구(고창석 분)의 코믹한 에피소드가 웃음을 자아낸다. 소지섭은 “일본 영화보다 원작 소설에 가깝다”며 “원작의 큰 틀은 두되, 눈물은 최대한 절제했다”고 전했다. 초등학생 아들 역할을 맡은 아역배우 김지환은 두 번째 만남 만에 그를 ‘아빠’라 부르며 따랐단다. 소지섭은 “아이와 장시간 놀아준 경험도 없어서 걱정했는데 호칭을 바꾸니 진짜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몸으로 부딪히며 친해졌다. 발목 잡고 거꾸로 들어주는 걸 좋아하더라”고 돌이켰다. 갓 태어난 아기를 가슴에 품는 장면을 찍을 땐 “잡으면 부서질 듯 작아 잘 만지지도 못했다”고 했다. 10분 만에 찍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빠가 된 우진의 벅찬 심정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실제 결혼 생각도 들었을까. 그는 “늘 있다 없다 했다. 이번에 지환 군과 놀아주는데 힘들더라. 내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려면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지호와 우진이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되게 아팠어요. 아빠 때문에 지호가 고생한다는 생각에 꽂혀서요. 어릴 적 저도 행복한 가정에선 못 자랐으니까….”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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