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외국인투자자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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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제가 온통 죽을 쑤고 있는데도 요즘 유독 활기를 띠는 곳이 있다.

바로 주식시장이다. 간혹 쉬어가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부진했던 휴가철 하한기에도 주가는 줄기차게 올라 연일 연중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단박에 성큼성큼 오르는 게 아니라 잰 발걸음으로 꾸준히 오른다. 증시에선 이런 상승장세가 오히려 탄탄하다고 한다. 쉬 오른 주가는 허망하게 고꾸라질 수 있지만, 바닥을 다지면서 오른 주가는 여간해선 폭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동안 가슴앓이를 해온 개미투자자들에겐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꺼져가는 경기에 불을 지피려고 안달인 정부도 그나마 버텨주는 증시가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이 상승장의 주역은 단연 외국인투자자들이다.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미군단이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 외국인투자자들은 먹성좋게 국내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였다. 이제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들의 비중이 40%에 육박했다. 사상 최고 수준이다. 외국인투자자가 없는 한국 증시는 이제 상상하기 어렵게 됐다.

이들이 한국기업의 주식을 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기대에서다. 국제적으로 큰돈을 주무르는 외국인투자자들이 뻔히 손해볼 줄 알면서 거금을 한국 주식에 퍼붓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치밀하게 이리저리 따져본 결과 투자할 만하다는 판단이 섰다는 얘기다. 주식은 미래를 보고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맞다면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기업의 장래를 밝게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제 눈을 돌려 또다른 외국인투자자들을 보자. 세계적인 식품기업인 네슬레가 투자한 한국법인은 지루한 노사분규 끝에 직장폐쇄를 한 데 이어 마침내 철수를 고려 중이라는 소식이다.

이미 들어와 있던 외국기업마저 보따리를 싸서 나가려는 판에 새로 들어오겠다는 외국기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노사분규 걱정 없고 인건비마저 싼 중국으로 가겠다는 데야 말릴 재간이 없다.

정부는 다급한 나머지 한국에 투자만 하면 투자금액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겠다고까지 해보지만 한번 마음이 떠난 외국기업들을 붙잡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시 헷갈리기 시작한다. 한국 증시에 먹을 게 있다고 밀려들어오는 외국인투자자는 누구며, 한국에선 장사를 못하겠다며 빠져나가는 외국인투자자는 또 누구인가. 둘 중에 한 쪽은 뭔가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한국경제의 전망이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외국인들의 투자행태가 엇갈리는 것은 투자의 성격이 다른 데서 비롯된다. 전자의 외국인투자자는 증권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기업의 주식을 산다지만 그 기업을 인수해 운영할 생각은 없고, 주가가 오르면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게 목적이다. 이런 투자자들은 사람이 직접 오질 않고 돈만 드나드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에 후자의 외국인투자자는 한국에 들어와서 기업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한국 땅에 공장을 짓고, 한국인을 고용해 생산과 판매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들어오기 전에 따져봐야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차하면 팔아치우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증권투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자 이제 정리해보자. 단기적인 수익을 좇는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은 몰려드는데 장기적으로 한국에 터잡고 한국인과 더불어 사업하겠다는 외국인투자자들은 등을 돌린다. 멀리 해외에서 한국주식을 거래할 수는 있겠지만 아예 들어와 사업하기는 영 불안하고 싫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외국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가진 인식이다.

김종수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