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발표 ‘6개항’ 문 대통령 제안하고 김정은이 수용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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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 정상회담 성사 등 정부가 특사단 방북 후 발표한 6개 항목은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수용하는 형식으로 정해졌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8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6일 김정은 위원장이 특사단과의 접견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이해한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며 “김정은은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면서 6개 항목에 대해 직접 다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6개 항은 지난달 김여정 등 북한 인사들이 방한했을 때 문 대통령이 먼저 꺼냈던 얘기”라며 “문 대통령은 비핵화를 비롯한 방법론까지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전한 남북 합의 뒷얘기 #지난달 김여정 방한했을 때 전달 #김정은 “어려움 안다”며 먼저 얘기 #‘로켓맨’ 등 자신 대한 평 웃어넘겨 #숙소 KBS·CNN 나오고 네이버 가능 #온반·냉면 … 김여정 “입에 맞습니까”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숙제를 던져놨는데 (김정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정의용 안보실장이 재차 얘기를 꺼내려고 4~5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했다”며 “하지만 김정은이 먼저 답변하면서 준비한 메모를 말할 필요도 없게 된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축적된 노력과 김 위원장의 숙성된 고민이 합쳐져 6개 항이 나왔다”며 “(김정은은) 베를린 선언 이후부터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제안한 한반도 평화 구상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방북 첫날인 지난 6일 성사된 김정은과의 면담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한 직후 숙소에 김영철 부위원장이 찾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이날 저녁 김 위원장을 만난다’고 통보했다”며 “김정은과의 면담 일정에 대한 확답 없이 방북했던 대표단 중 한 명은 ‘일이 잘 풀리겠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6일 접견과 만찬은 4시간 넘게 이어졌고, 6개 항도 그 자리에서 만들어졌다.

특사단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전 세계 시선과 우리 국민이 갖는 기대도 잘 알고 있었다”며 “북한으로서도 쉽지 않은 몇 가지 난제를 푸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힘을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김 위원장은 (서방 언론에) 보도된 자신에 대한 평가, 이미지 등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며 “이에 대해 무겁지 않은 농담을 섞어서 여유 있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을 지칭하며 ‘핵무기를 가진 미치광이(madman)’ ‘꼬마 로켓맨’ ‘병든 강아지’ 등으로 표현해 왔다.

접견과 만찬에서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실장이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려고 일어나자 김 위원장이 같이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 친서를 전달받았다”며 “당초 정 실장은 (맞은편에 있던) 김정은의 자리로 가서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했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대표단이 머무른 숙소인 고방산 초대소 건물 한 층을 내줬다. 청와대 관계자는 “숙소에 있던 TV에는 KBS·MBC 등 국내 방송은 물론 CNN· CC-TV 등 전 세계 방송이 나왔다”며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도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어 특사단은 국내 뉴스까지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화려하다기보다는 세심한 환대였다”며 “북한 대표단이 방한했을 때 냉면과 평양식 온반을 언급했는데 실제 첫날 만찬에 온반이 나왔고, 둘째날에는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으로 특사단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의 특사로 방한했던 여동생 김여정은 “북한 음식이 입에 맞습니까”란 인사도 건넸다고 한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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