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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후폭풍, 따가운 눈총 받는 TV 가족예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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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연예인이 가족과 함께 출연해 일상을 보여주는 가족 예능은 연예인에게나 제작자에게나 훌륭한 포맷이었다. 제작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로 스타의 사생활을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를 유인했고, 연예인은 가족들을 통해 스타 대신 누군가의 부모, 자녀, 혹은 사위·며느리로서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친근한 이미지를 더했다. 숱하게 터져 나왔던 ‘연예인 세습’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족 예능은 여전히 예능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는 포맷이다.

성폭력 연예인에 배신감 커져 #함께 출연한 가족들에도 불똥

연예인 가족 예능의 부작용이 최근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 전반의 ‘미투(#MeToo)’ 흐름과 함께 연예인들의 성폭력 논란이 잇따라 일면서다. 기존의 친근한 이미지에 대한 배신은 연예인에 대한 더욱 큰 비판을 불러오고, 비판의 대상은 연예인 본인을 넘어 가족에게까지 향한다.

2015년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 딸과 함께 나온 배우 조재현. [사진 SBS]

2015년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 딸과 함께 나온 배우 조재현. [사진 SBS]

지난 6일 MBC ‘PD수첩’을 통해 성폭력 정황이 추가로 공개된 배우 조재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방송에 출연한 제보자는 영화 촬영을 위해 머물던 합동 숙소에서 김기덕 감독은 물론 조재현으로부터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보다 앞선 지난달 23일에는 JTBC ‘뉴스룸’에 나온 제보자가 “혼자 있으면 (조재현이) 갑자기 나타나 뒤에서 손을 넣는다든지 이런 짓을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고발 이후 조재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던 건 당연했다.

비판 여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딸인 배우 조혜정을 향했다. 조혜정의 SNS에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담긴 댓글이 이어졌다. 지난 2014년 OCN 드라마 ‘신의 퀴즈 4’로 데뷔한 조혜정은 이듬해 조재현과 함께 SBS 가족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해 주목을 받았고, 이후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왔다. 조혜정은 현재 SNS에 글을 쓸 수 없도록 댓글 창을 닫아놓았다.

2015년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 딸과 함께 나온 배우 조민기. [사진 SBS]

2015년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 딸과 함께 나온 배우 조민기. [사진 SBS]

역시 SBS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한 배우 조민기 또한 상황이 비슷하다. 방송에 자녀와 부인을 등장시키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최근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여러 제자 등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가한 정황이 드러나 경찰 조사를 받게됐다. 일반인인 조민기 딸과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부인의 SNS 및 블로그에도 비판 글이 이어졌고, 딸은 현재 SNS 계정을 닫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욕하는 대중은 비난이 가족을 거쳐 연예인에게 가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특히 가족 예능을 통해 연예인이 된 연예인 자녀에 대해서는 함께 기득권을 누렸다는 생각과 함께 방조자로 보는 시각도 작용하며 비난이 더욱 거세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성에 대한 열망, 연예인 세습에 대한 반감이 함께 어우러진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조혜정 SNS의 비판 댓글에는 “아빠 재력과 인지도로 ‘아빠를 부탁해’ 나올 때는 우리 아빠고, 아빠가 성추행하면 남의 아빠냐(ys***)”같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가족 예능으로 쌓은 이미지에 금이 가면 그 틈을 메우기 또한 쉽지 않다. 2015년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딸과 함께 출연한 배우 엄태웅은 2016년 성매매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맡은 영화 ‘포크레인’(감독 이주형)으로 지난해 스크린을 통해 복귀했지만, 누적 관객 수 170명이라는 냉혹한 성적표를 받았다. 2012년 MBC ‘아빠! 어디가?’에 두 자녀와 함께 출연한 송종국 또한 2015년 배우인 아내 박잎선과 이혼하면서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한 지상파의 예능 PD는 “가족 예능에서 따뜻한 아빠의 이미지를 부각해놓고 뒤에서 다른 짓을 했다는 배신감이 크다”고 말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어설픈 매니지먼트는 역풍만 불러올 뿐”이라며 “연예인이나 기획사는 이번을 성찰과 숙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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