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화 놓고 부자 간 한판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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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오른쪽)이 23일 칠레와의 전쟁 127주년 기념식에서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볼리비아는 1879~84년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해 태평양 연안에 대한 접근로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라파스 AP=연합뉴스]

볼리비아 최초의 인디오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47). 출범 2개월이 막 지난 모랄레스 정부에서 기업 담당 부장관을 맡고 있는 에두아르도 페이나도 리베로(28). 그를 만나 놀라게 되는 것은 약관의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 모로 봐도 그는 모랄레스와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모랄레스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다. 부유한 백인 가문 출신인 페이나도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한 백인이 국부(國富)의 80%를 움켜쥐고 있는 극단적 양극화 현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양극화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개방과 민영화를 골자로 한 신자유주의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다.

반면 페이나도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전위대인 세계은행에서 볼리비아 담당으로 일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페이나도는 노타이를 고집하는 모랄레스와는 아무래도 물에 기름 같은 관계다. 그럼에도 모랄레스는 페이나도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망설였다. 시민단체 출신이 대부분인 모랄레스 내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페이나도는 아버지와도 상의했다. 그의 부친 에두아르도 페이나도 테란(56)은 현재 미국 코카콜라사의 볼리비아 현지법인 최고경영자(CEO)다.

볼리비아 전국산업연합회 회장이기도 한데, 우리로 치면 전경련 회장이다. 아버지의 조언은 뜻밖이었다. "기성 정치인들은 '사회의 쓰레기' 같은 존재였지만 모랄레스는 투명성과 정직성, 개혁 가능성에서 다른 것 같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부친은 그동안 외국에서 공부한 것을 국가를 위해 쓰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페이나도는 결국 대통령에게 고언(苦言)을 하는 것도 국가를 위한 기여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모랄레스 내각에 합류했다. 그의 첫 월급은 1만2000볼리비아노. 미국 돈으로 약 1500달러다. 세계은행에서 받던 월급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선거 공약대로 모랄레스는 자신을 포함한 장관과 고위 공직자들의 월급을 기존의 절반 이하로 깎았다. "아직 미혼이기 때문에 어차피 돈 쓸 곳도 별로 없다"며 페이나도 부장관은 씩 웃었다.

현재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에 따라 1990년대 민영화된 10개 기업을 다시 국영화하는 작업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코카 잎 재배 노동자 출신으로 사회주의운동당(MAS)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종속적인 경제 구조와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국유화가 불가피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천연가스.석유.철도.항공.통신.전력 기업의 재국유화를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었다. 과거 정권들이 뒷돈을 받고 외국 자본에 팔아넘긴 기간산업체들을 되찾아 경제 주권과 자원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페이나도 부장관은 재국유화 대상으로 지정된 기업들의 주식 51%를 확보하기 위해 해당 기업들과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한꺼번에 지급할 능력이 정부에 없기 때문에 10 ~ 20년에 걸쳐 분할 상환하는 조건으로 재매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국유화를 담당하고 있는 페이나도 부장관과 민간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페이나도 전국산업연합회 회장.

아들과 아버지는 이제 창과 방패가 되어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하는 입장이 됐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들이 몸담고 있는 모랄레스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천연가스 같은 지하자원은 볼리비아 국민의 것이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국민을 위해 사용된 적이 없다. 일부 정치인의 뱃속을 채우는 데만 사용됐을 뿐이다. 재국유화 정책은 그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시도라고 본다."

그러나 페이나도 회장은 재국유화 과정에서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개인의 사유재산권이 침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랄레스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처럼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추구할 경우 볼리비아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라파스(볼리비아)=배명복 순회특파원

모랄레스 대통령은
백인 기득권층에 거부감
당선 이후도 넥타이 안 매

볼리비아는 1980년대 초부터 25년간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아 왔다. 과거 백인 정권들은 국영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자유경쟁 체제 도입 등 IMF가 제시한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하지만 81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 일인당 실질 국민소득은 오히려 4% 줄어들었다.

IMF는 그 원인을 정치불안과 부패 탓으로 돌리고 있다. IMF 처방이 잘못된 게 아니라 '정부의 실패'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계층은 전체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인디오 원주민들이었다. 지난해 말 대선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반(反)신자유주의와 사회주의적 개혁 정책을 앞세워 54%의 높은 지지율로 당선했다. 하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대중의 기대는 높지만 하루아침에 난마처럼 얽힌 부패와 빈곤의 악순환 구조를 바로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랄레스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한 번도 정장 차림을 하지 않을 정도로 넥타이를 맨 백인 기득권층(코르바테로스)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그들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 모랄레스 개혁 정책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잉카제국의 규율을 차용해 모랄레스는 공직자들에게'훔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게으름 피우지 말라'는 세 가지 지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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