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바꾼 대학풍경…러브샷 사라지고 교수는 방문 열어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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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열린 연세대학교 동아리 박람회. [중앙포토]

지난 7일 열린 연세대학교 동아리 박람회. [중앙포토]

"지난 학기만 해도 남녀가 러브샷을 하면 '사귀어라. 결혼해'를 외쳤지만 지금은 남녀 서로 러브샷도 피해요."

개강 첫 주, 캠퍼스 술자리에 대해 대학생 정다훈(25)씨는 이같이 말했다. 신입생 입학과 각종 모임으로 떠들썩했던 과거 3월과 다르게 올해 미투 운동의 물결 속 맞이하는 3월 대학가는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학생회도 팔을 걷고 나섰다. 송새봄 연세대 총여학생회 회장은 "신입생 OT나 술자리에서 풍선 안아 터뜨리기 게임이나, 술자리 러브샷 자제를 권고했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권주사로 '나이스바디, 나이스바디 OOO'을 외쳤는데, 앞으로는 하지 않기로 신입생 OT에서 교육했다"고 밝혔다.

남성 교수들 분위기도 다르다. 최근 대학가에 여러 차례 교수 성희롱 사건이 불거지면서 남성 교수들도 자신들의 행동을 검열하고 주의한다. 서울 동대문구 소재 대학 A교수는 "이전에도 주의했지만 이제는 학교도 학생들도 예민하다. 여학생과의 상담은 문을 열어놓고 하거나 여자 조교가 같이 있는 상태에서 한다. 이번 학기는 이런 부분을 더 신경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건물 안 게시판에 법조계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성명서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건물 안 게시판에 법조계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성명서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미투 운동에 대한 토론도 활발하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이모(20)씨는 "요즘은 어딜가나 미투 얘기뿐이다. 남녀 간에 토론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도 있다. 대학생 단조은(25ㆍ여)씨는 "점점 가해자 처벌을 넘어 감정적 분노 표출로 전개되는 것 같다. 가해자 가족에 대한 비난은 큰 문제다"고 말했다. 이모(25)씨는 "매번 미투가 터질 때마다 남성은 범죄자로 비난받는다. 남자로 성희롱을 당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는 문제 제기가 어렵다"고 했다.

학내 페미니즘 동아리나 학회는 남성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서강대 페미니즘 학회 소속 배모(30)씨는 "남성들이 미투에 대해 개입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게 먼저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는 관련 도서 대출도 큰 폭으로 늘었다. 서강대 중앙도서관에 따르면 여성과 페미니즘 관련 도서 대출 건은 2017년 1학기(3.1~8.31) 1448건에서 2학기(17.9.1~18.2.28) 4731건으로 늘었다.

관련 수업 수강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교수들은 강의실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외대에서 10년째 '여성과 사회' 수업을 가르치는 박혜숙 교수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수강인원 변동이 없다가 이번 학기는 지난해보다 수강인원이 2배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페미니즘의 이해' 수업을 담당하는 배유경 교수는 "듣고 싶어하는 학생이 많아 수강인원을 증원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 열정이 이전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첫 수업부터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건국대에서 '페미니즘과 성' 교양 수업을 개설한 윤김지영 교수는 "페미니즘 수업이 과거에는 수강인원 미달로 폐강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편지까지 보내며 수업을 듣고 싶다고 한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차별에 대해 설명해줄 언어, 싸울 언어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이어 "남녀 모두 기성세대가 늘 얘기한 '원래 그런 거야'와 다른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남학생들도 '현재 성차별 문화에 사회 구성원 모두 연루됐다. 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느낀다더라. 미투 운동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여성국·정진호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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