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바르고 소탈하지만, 소통안하고 이미지 관리 치중하는 안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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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김지은씨. [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김지은씨. [연합뉴스]

‘예의 바르고 민주적 리더십을 갖췄다. 하지만 의사 결정을 미루고 실질적인 소통은 하지 않는다.”
공보비서를 성폭행한 의혹으로 사퇴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보는 도청 안팎의 시각이다. 인간적이고 소탈한 면이 있었지만, 측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거대 담론에 치우친 ‘알아듣기 힘든 화법’으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도청에서 고위직을 역임하고 퇴임한 한 인사는 “안 전 지사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예의 바르게 대하고 늘 겸손한 모습을 보여 마음에 들었는데 성폭행 의혹이 터져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안희정 전 지사와 안 전 지사가 김지은씨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내용. [연합뉴스, 중앙포토]

안희정 전 지사와 안 전 지사가 김지은씨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내용. [연합뉴스, 중앙포토]

안 전 지사는 시골 전통시장을 찾아 어르신을 만나거나 토크콘서트 등에서 큰절로 인사를 하곤 했다. 취임 초기에는 도청 구내식당에서 직접 식판을 들고 밥을 날라다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도청 직원 A씨는 “안 지사가 도청 온라인망에 직원 토론방을 개설해 운영하는 등 조직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충남도청 공무원노조 김태신(행정 7급)위원장은 “보수 단체와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등 통합 행보를 해왔다”고 했다.

'노인들에게 인사 잘하고 소탈한 모습 등으로 이미지 관리' #'관사 출입 제한하고 휴대전화 공개 안하는 베일에 쌓인 인물' #정무라인 안 전 지사와 잠적한 채 소통안하는 것도 도마위

지난 6일 취재진들이 충남도청 5층 비서실과 도지사실을 취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6일 취재진들이 충남도청 5층 비서실과 도지사실을 취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하지만 안 전 지사가 실질적으로는 소통보다는 ‘불통’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게 언론을 대하는 태도다. 안 전 지사와 지난 8년 동안 직접 전화통화를 해봤다는 기자들은 거의 찾기 어렵다. 안 전 지사의 직통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도 핵심 측근 몇몇을 제외하고는 없다. 한 기자는 "안 전 지사와 통화하려고 비서관에게 전화했더니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안 전 지사는 언론과의 만남에서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또 지난 대선 경선과정에서 ‘대연정’을 주장했지만, 여소야대 상황인 도의회와 협치(協治)는 시도하지 않았다.

안희정 전 지사가 운영하는 서울의 더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모습. [중앙포토]

안희정 전 지사가 운영하는 서울의 더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모습. [중앙포토]

안 전 지사는 또 중요한 의사 결정은 정무라인에 의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공직자들은 이들 정무라인을 ‘캠프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폐쇄적인 관사 운영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충남도의회 A의원은 “다른 지자체는 관사를 잘 안 짓는 추센데 도청이전 신도시 조성 당시 안 전 지사는 관사 건립을 강행했다”며 “관사에는 아주 가까운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고,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B의원도 “관사가 도청 근처에 있긴 하지만, 주변에 민가가 없어 전혀 내부 상황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희정 전 지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안희정 전 지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충남도의 한 공무원은 “안 전 지사는 아이돌 스타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 정치인’ 같았다”며 “제왕이 궁녀를 대하는 듯한 봉건시대 명령체계가 결국 초유의 여비서 성폭력 사건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충남도청과 충남도청 주재 기자들 사이에서는 폭로 일주일 전쯤부터 이미 “안희정 큰 거 하나 터진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도청 공무원 김모(39)씨는 “‘안 지사님이 누구(여자)를 잘못 건드렸다’는 속칭 ‘찌라시’가 도청 공무원과 기자 사이에서 돌았다”며 “대부분 ‘말이 되느냐’며 웃어넘겼는데 사실로 밝혀져 어안이 벙벙했다”고 했다. 충청지역의 한 주재기자는 “안 지사 반대하는 세력이 ‘씹을 거리’로 유포한 괴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고 했다.

충남도청 입구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중앙포토]

충남도청 입구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중앙포토]

전원 사퇴한 후 잠적한 안 전 지사 정무라인을 탓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불거지는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폭로 이후 잠적하는 게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충남도청 공무원노조 한 관계자는 “정무라인이 다 숨어버리고 8일 예정된 기자회견까지 취소한 게 맞는 태도인가”라며 “남아 있는 도청 공무원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우선 아닌가”라고 했다. 다른 한 도청 공무원도 “대행체제로 운영되는 도정 체제가 이른 시일 내에 안정화하려면 안 전 지사측의 적극적인 사실관계 해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성=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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