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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카를로스 고리토의 비정상의 눈

브라질의 트로찌, 한국의 신입생 환영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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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며칠 전 친구와 약속이 있어 대학가 근처를 방문했다. 평소에도 젊은 친구들로 활기를 이루는 장소지만 그날따라 더욱 눈에 띄게 북적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신입생 환영회’가 줄을 잇는 시기라 이렇게 학교 주변이 시끌시끌하다고 했다. 설렘과 열기가 느껴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이제는 정말 까마득한 나의 신입생 시절이 떠올랐다.

브라질에도 ‘트로찌(Trote)’라고 불리는 신입생 환영회가 존재한다. 트로찌는 포르투갈어로 ‘장난’이라는 뜻이 있다. 일단 트로찌를 치르는 신입생들은 머리를 전부 박박 민다. 학교에 따라서는 수석과 차석의 머리에 숫자 1과 2를 새기기도 한다. 물론 여학생들은 머리를 다시 기르는 데 오래 걸리기에 봐주는 편이다. 그 후에는 남학생과 여학생 구분 없이 전부 지저분하게 만든다. 옷을 찢거나 페인트, 밀가루, 마테차, 계란 등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더러워진 신입생들을 길거리로 내보낸다. 신입생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와야 하는 미션이 있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행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식으로 대가를 받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인 돈은 이후에 있을 진짜 ‘신입생 환영회 파티’에 쓰이게 된다.

비정상의 눈 3/8

비정상의 눈 3/8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전통이기 때문에 대부분 학생은 이 트로찌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가끔은 너무 지나친 장난으로 사건·사고가 생기는 일도 있다. 나만 하더라도 트로찌를 치르는 중에 팔이 부러진 경험이 있다. 이처럼 트로찌에서는 종종 작은 부상부터 심한 경우에는 사망 사고도 일어난다.

그래서 최근의 트로찌는 좀 더 온건한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선후배들이 모여 헌혈을 하거나, 요양원 봉사활동을 가는 식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의미 있는 활동을 함께 하는 것도 새로운 우정을 쌓는 데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친구와 약속을 마치고 대학가를 빠져나오는 동안 많은 학생이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에서도 종종 신입생 환영회에서 지나친 음주 강요 등으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고 들었다. 올해에는 트로찌를 치르는 브라질 학생들도, 신입생 환영회를 보내는 한국 학생들도 아무 사고 없이 즐거운 추억만 남기기를 바란다.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