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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관점에서 본 손흥민 군 면제 국민청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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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손흥민이 최근 영국 프리미어리그 한 경기 두 골을 몰아넣는 대활약을 펼치자 또다시 ‘병역 면제’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시작됐다. 이런 팬덤이 작금의 ‘미투(#MeToo)’ 현상과 겹쳐 보인다면 비약일까.

‘면제는 횡재’라는 통념에, ‘신성한 병역의무’ 신념 무색해 #겉다르고 속다른 한국사회 이중성을 #MeToo 표적 삼아야

그의 환상적 득점 퍼레이드를 군 복무 21개월 간 보지 못하게 될까봐 손 선수 광팬들은 전전긍긍이다. ‘손흥민 대신 방탄이나 엑소를 군대 보내면 되지 않느냐’는 웃픈 성원 글도 눈에 띈다. 언론도 가세했다. ‘2년 안에 입대해야 하는 만 26세 손흥민에게 병역면제의 마지막 기회는 올 8월 아시안게임에서 입상하는 것’이라고 친철하게 거든다.

근데 뭔가 찜찜하다. 공개석상에서는 ‘신성한 병역의무’가 정답인데, 사석에서는 답이 여러가지다. 병역은 메달·트로피와 맞바꿀만 한 것, 아니면 20대 초반 청춘기를 저축해 줄 로또쯤으로 둔갑한다.

네이버 초기화면에서 ‘병역 브로커’란 단어를 쳐 보면 더 이해가 쉽다. 네티즌이 만드는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이승엽 선수의 대표적 별명 중 하나. 야구 국가대표 중심타자로 활약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후배들의 병역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줌. …’이라고 나온다. 그래도 명색이 사전인데 ‘뒷돈 받고 병역을 불법으로 빼주는 해결사’라는 원 뜻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달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병역 브로커’ 스타가 새로이 탄생했다.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승훈 선수다. 팀추월 종목 은메달까지 합작해 같은 팀 10대 후배인 정재훈에게 병역면제의 ‘기쁨’을 안겼는데 벌써 이런 일이 여러번이란다.

징병제 국가의 군대 문제 못지않게 표리가 다른 분야가 성(性) 담론이다. 일찍이 이런 이중성을 깨부수려다가 스스로 깨져버린 인물이 작고한 마광수 교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사회의 이중 정서에 환멸을 느낀다. 근엄한 척하면서 뒤론 별짓 다하는 위선에 시비를 건 것이 『즐거운 사라』 였다”고 털어놨다. 마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추문 사건이 폭로된 지난 5일에도 “미투 운동을 통해 인권실현에 동참하자”고 주변에 독려한 것처럼. 전직 국회의원 말마따나 ‘수컷 본능이 유난히 강한’ 여의도 정치판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MeToo’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좌파의 동지적 위계든 우파의 관료적 위계든 ‘위계에 의한 성폭력’ 단죄 바람이 정계에도 불어닥칠 조짐이다.

어디 이뿐인가. 요즘 대학가에는 스포츠 스타, 유명 연예인 학사 특혜 퇴출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집단 눈감아 주기가 비단 이뿐일까.

한국 사회의 두 얼굴은 퍼레이드로 꾸밀 만하다. 복지혜택은 달갑지만 재원 부담은 싫다는 눔프(NOOMP), 장애인 시설은 필요하지만 우리 동네엔 곤란하다는 님비(NIMBY)는 고전적이다. 특수목적고를 교육 불평등의 주범으로, 대학생 과잉을 청년실업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도 내 자식은 외국어고·조기유학 보내고 명문대 보내야 직성풀리는 표리부동, 취업절벽 시대에 채용 공정성을 부르짖으면서 내 자식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좋은 직장에 줄대는 내로남불이다.

천민자본주의란 괴물은 준법정신과 공인의식은 졸자라게, 권리의식과 특권의식은 웃자라게 만들었다. ‘한국인은 법 질서 안 지키면서 자기 이익 권리를 챙기는데 선수’라는 게 한국법제연구원 실증연구의 결론이다.

빅뱅이나 싸이가 국방의 역군보다 K팝 역군이 되는 게 더 애국하는 길일 수 있다. ‘손흥민 이병’ 대신에 유럽 무대의 아시아 최고 축구선수로 하루 빨리 등극하는 것이 국위 선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군대 안 가는게 좋다’는 맥빠지는 인식이 전염병처럼 번지지 않도록 유념하자. 미투는 겉과 속 다른 성적 갑질에서 촉발된만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중성의 확정(廓正)을 미투의 목표로 삼야야 한다.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