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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평창 패럴림픽과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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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장애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야구장에 갔다. 빈자리가 많은데도 문전에서 거절당했다.” 1987년 7월 11일자 중앙일보 독자 페이지에 실린 글이다. 장애자보조원 이용기씨는 “내년이면 올림픽은 물론 세계장애자올림픽까지 개최하는 나라로서 이는 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장애자에 대한 경기장 출입제한 조치가 하루속히 풀릴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30년 전 장애인 복지 크게 늘린 서울올림픽의 유산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노랫말 평창서 더욱 꽃피길

격세지감이다. 요즘 같으면 매를 맞아도 단단히 맞을 일이다. 이듬해 7월 8일자 중앙일보 사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서울장애자올림픽을 앞두고 장애자를 위한 대책기구가 청와대 직속으로 설치되리라 한다. 그동안 장애자 문제는 화려한 구호로는 빈번히 논의됐지만 실질적은 대책은 별무였던 현실에서 대통령 자문기구라도 생긴 것은 다행이다.”

단어 ‘장애자’가 낯설다. 81년 처음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이 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 바뀌면서 심신장애자가 장애인으로 개정됐다. 장애자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여론을 따랐다. 오늘 성화가 다시 타오르는 평창 패럴림픽을 맞아 30년 전 신문을 들춰본 것은 88년 서울올림픽이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88년 서울은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가 같은 도시에 모인 첫 통합올림픽을 열었다.

서울 패럴림픽은 산 넘어 산이었다. 대회 유치 발표 이후 곳곳에서 반발이 일었다. 장애인 편의시설도 없는 나라에서 무슨 올림픽이냐는 비판이 거셌다. 대회 개막 1년 전까지 경기장을 확정하지 못했다. 서울 가락동 선수촌 주변 아파트값이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궁즉통(窮卽通)이랄까, 위기는 기회가 됐다.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화가 도입됐고, 장애인복지체육회가 설립됐다. 집안에 갇혔던 많은 장애인이 거리로 나올 수 있게 됐다.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은 “서울 패럴림픽은 장애와 비장애인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단초가 됐다”고 했다.

지난 3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 성화 합화식을 구경했다. 전국 5곳서 채화된 불씨, 88올림픽기념관에 보관된 불씨, 패럴림픽 발상지인 영국 스토크맨더빌에서 공수한 불씨, 전 세계 응원 메시지를 담은 디지털 불씨까지 모두 8개의 불씨가 하나의 불꽃으로 뭉쳤다. 기념공연도 열렸다. 이날 마지막 무대에 오른 가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의 노랫말이 가슴을 후볐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사람이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 돌려 말하면 아프니까 사람이다. 그럼에도 패럴림픽을 앞두고 듣는 ‘아프지 말고’는 각별했다.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나 병에 걸릴 수도, 사고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국내 장애인의 90%가 질병·낙상 등 후천적 요인 때문이라는 통계도 있다. 패럴림픽 주최 측에 알아보니 한국 국가대표 36명 중 소아마비나 어린 시절 질환을 빼놓고도 총 23명이 중도장애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 혹은 차별이 덧없기만 했다.

평창이 다시 환해진다. 앞으로 열흘간 지난 겨울올림픽 이상의 감동과 열정이 쏟아질 것이다. 수많은 휴먼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인간 승리 비슷한 영웅담은 이제 사절이다. ‘다르지만 함께 가는 우리들’에 박수를 치는 마당이 됐으면 한다.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국내 장애인 재활시설, 직업시설 등에 눈을 돌리는 또 다른 변곡점이 되길 바란다. 미흡하나마 평창·강릉이 ‘무(無)장애 도시’로 변신 중이라는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외국기관 50곳을 탐방한 『보통의 삶이 시작되는 곳』이란 책이 있다. 대학 시절 전신화상을 이겨내고 지난해 한동대 교수가 된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씨 이름도 보였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창에 거는 기대를 물었다. “더도 덜도 말고 장애인은 건강하다는 것 하나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다. 우리 모두 ‘아지토스’(나는 움직인다·패럴림픽 엠블럼)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