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9단 “커제는 생각보다 두려운 상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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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커제 9단을 꺾고 농심배 한국 우승을 확정 지은 김지석 9단. 김 9단은 ’개인전 우승 못지않게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커제 9단을 꺾고 농심배 한국 우승을 확정 지은 김지석 9단. 김 9단은 ’개인전 우승 못지않게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불리는 농심신라면배(이하 농심배)는 한국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총 14번 대회에서 한국은 11차례 우승하는 등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다. 형세가 급반전된 건 2014년부터다. 세계 무대에서 급성장한 중국은 2014년부터 4년 내리 우승컵을 가져갔다. 농심배에서 중국의 독주가 이어지는 모양새였다.

커제 9단 꺾고 한국 우승 확정 #한국 5년 만에 농심배 우승 되찾아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아 승리” #올해 목표는 세계대회 개인전 우승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은 ‘올해는 꼭 우승컵을 되찾아 오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출발도 좋았다. 한국의 첫 번째 주자인 신민준 7단이 6연승을 달렸다. 그런데 신 7단을 꺾은 중국의 당이페이 9단이 5연승을 기록하며 다시 중국이 상승세를 탔다. 믿었던 국내 랭킹 2위 신진서 8단도 당이페이 9단에게 고개를 숙였다.

바로 그때 한국 대표팀의 맏형 김지석(29) 9단이 출동했다. 김 9단은 지난달 28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 호텔에서 열린 농심배 제12국에서 당이페이 9단을 꺾은 데 이어, 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농심배 제13국에서 중국의 마지막 주자인 커제 9단을 물리치고 한국의 우승을 확정했다. 두 대국 모두 어려웠던 바둑을 강한 집념으로 이겨냈다. 농심배 우승의 일등 공신인 김지석 9단을 6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김지석 9단이 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지석 9단이 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5년 만에 한국이 우승했다. 우승 소감은.

“예전에 농심배에 출전해 우승했을 때(11·14회)는 내가 일찍 떨어지고 다른 사람 덕분에 한국이 우승했다. 이번에는 내가 마무리를 하게 됐는데 개인전 우승 못지않게 기분이 좋았다.”
당이페이에 이어 커제와의 대국이 모두 극적인 바둑이었는데.
“사실 바둑 내용은 두 판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 실수가 잦았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에서도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잘한 점인 거 같다. 평소에는 이기고 싶으면 의욕만 앞섰는데 이번에는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믿고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두 판 중에 더 어려웠던 바둑은.
“바둑을 두기 전에는 당이페이 9단과의 대국이 더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5연승을 거둔 당이페이 9단의 기세가 좋았기 때문이다. 바둑 내용만 놓고 보면 커제 9단과의 바둑이 역전 가능성이 더 낮았던 어려운 판이었던 거 같다.”
커제 9단과의 대국은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비결은.
“바둑이 불리했지만 좌하귀에 기분 나쁜 모양이 있어서 커제 9단이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실제로 그 부분에서 커제 9단의 실수가 나왔고, 그 바람에 형세가 달라졌다.”
김지석 9단이 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지석 9단이 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번 승리로 커제 9단과 상대 전적이 4승 2패가 됐다. 커제 9단에게 강한 것 같다.
“커제 9단이 물론 잘 두긴 하지만 아주 특별한 기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실수하는 것처럼 그도 실수할 수 있다. 지금 커제 9단이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데 실제로는 알려진 만큼 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선수들이 커제 9단과 대국할 때 지레 겁먹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바둑 공부할 때 관심 있게 보는 부분은 무엇인가.
“요즘에는 ‘알파고 제로’ ‘알파고 마스터’ 등의 기보를 보고 있다. 알파고의 수법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기보를 놓아보면 알파고는 확실히 바둑판을 사람보다 넓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바둑도 자주 두나.
“일 년에 한 번 둘까 말까다. 인터넷 바둑은 패배하면 이상하게 기분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잘 두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프로기사들에 비해 실전 경험이 부족한 편이다.”
최근 성적이 좋은데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올해 김지석 9단의 성적은 15승 1패다.)
“작년 말부터 농심배가 가장 신경이 쓰였는데 잘 넘긴 거 같다. 단체전인 농심배는 잘했으니까, 이제 세계대회 개인전에 나가서 우승하는 게 목표다.”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한·중·일 대표선수 5명씩 출전해 연승전 방식으로 대결하는 국가대항전. 우승상금 5억원. 한국기원이 주최하고 ㈜농심이 후원한다. 올해 대회까지 한국이 12회, 중국이 6회, 일본이 1회 우승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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