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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월드 맞은편엔 신데렐라보다 사랑스런 꼬마가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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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진 Wannabe FUN 제공]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진 Wannabe FUN 제공]

“플로리다의 여름을 누비는 여섯 살 꼬마를 보고 있으면 이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어린 배우 브루클린 프린스를 두고 관록파 배우 메릴 스트립이 한 말이다. 현재 여덟 살인 프린스는 2년 전 촬영한 이 영화에서 보여준 생기발랄한 연기로 올해 미국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사상 최연소로 아역상을 받았다.

새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

 그가 연기한 무니는 미국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 건너편 싸구려 모텔촌에 사는 골목대장 소녀다. 미혼모인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분)와 살고 있는 모텔 이름은 ‘매직 캐슬’. 하지만 이들의 삶은 ‘꿈의 궁전’이라 불리는 고급 테마파크 단지와 동떨어져 있다. 화려한 염색과 문신에, 전과가 있는 핼리는 변변한 직업 없이 관광객들에게 푼돈을 벌어 무니를 먹인다. 다른 집 형편도 비슷하다. 무니 친구 스쿠티네 엄마는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 음식을 빼돌려 아이와 허기를 채운다. 아이들은 아동성애자 등 위험과 범죄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진 Wannabe FUN 제공]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진 Wannabe FUN 제공]

 그런데도 영화의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아동복지국에 딸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는 엄마 핼리는 무니에겐 누구보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다. 더구나 무니가 친구들과 디즈니월드로 향하는 고속도로 어귀를 쏘다니며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버려진 콘도에서 미래의 ‘스위트 홈’을 상상하고, 테마파크의 담장 너머 화려한 불꽃놀이에 환호하는 하루하루가 작은 축제이고 모험 같다.

 “무니! 스쿠티!” “왜에!” “무니! 스쿠티!” “왜에!” 무니와 친구들의 다채로운 여정은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양 아이들이 서로 이름을 목청껏 외쳐대는 첫 장면부터 관객을 빨아들인다. 어떤 비극이 닥쳐와도 즐거움을 찾아낼 것만 같던 무니가 처음 울상을 짓는 순간에는 관객도 덩달아 가슴이 미어진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순간 묻게 된다. 이토록 천진한 무니가 왜 슬퍼야 하는 걸까.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진 Wannabe FUN 제공]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진 Wannabe FUN 제공]

 감독을 맡은 션 베이커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스타다. 제작자 크리스 버고흐는 공동 각본가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포르노 여배우와 까칠한 노파의 우정을 그린 ‘스타렛’(2012), 유색인종 트랜스젠더들의 바람둥이 소탕작전을 그린 ‘탠저린’(2015)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세 편의 장편영화 각본을 함께 썼다. 버고흐는 2011년 플로리다에 사는 어머니 집을 찾았다가 디즈니월드 주위에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베이커 감독과 버고흐는 3년 간 디즈니월드 주변 모텔촌을 취재해 사실감을 더한 장면을 빚어냈다. 극 중 모텔은 실제 운영 중인 모텔들이고, 오디션으로 뽑힌 프린스를 제외한 다른 아역들은 인근 지역에서 캐스팅했다. 엄마 핼리를 연기한 브리아 비나이트는 인스타그램에서 발굴한 신예다. 베테랑 배우 웰렘 대포는 전작 ‘탠저린’에 반해 감독을 먼저 찾아온 경우다. 이번 영화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모텔 매니저 역할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사진 Wannabe FUN 제공]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사진 Wannabe FUN 제공]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 초저예산으로 촬영한 덕에 현장감은 외려 더 살았다. 주로 35mm 필름을 썼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질주하는 엔딩신은 ‘탠저린’에서도 사용한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본래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5년 디즈니월드가 처음 지어질 때 사업 명칭. 지금은 집 없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그렇게 부른다. 2008년 경기침체 이후 집을 얻을 목돈이 없어, 일주일에 250달러 안팎으로 사실상 월세보다 더 비싼 허름한 모텔촌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숨은 홈리스(hidden homeless)’라 불린다. 이 영화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전미비평가협회상, 인디스피릿 어워드 등에서 큰 호평을 받으면서 미국에선 숨은 홈리스 문제가 재조명됐다. 7일 개봉.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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