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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트럼프의 정신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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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같은 의미인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와 함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키팅 선생의 명대사로 꼽힌다. 영화 속 청춘들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이나 좋은 직장 같은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혀야만 했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울림이 컸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사는 이들에겐 카르페 디엠이 현재의 행복을 회복하는 마법의 주문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만 있고 과거와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에겐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지난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는 정신의학자 등 미국 전문가 27명이 트럼프의 정신상태를 분석한 책이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등은 이 책에서 트럼프를 “현재의 순간에만 살며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나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극단적 현재 쾌락주의자로 정의한다. “극단적 현재 쾌락주의자는 자신의 자아를 부풀리고, 선천적으로 낮은 자존감을 달래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가리지 않고 하며, 과거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즉흥적인 말 또는 큰 결정이 불러올 미래의 파괴적 결과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다른 분석도 충격적이다.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병적인 나르시시즘, 타인의 이견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분노를 파괴적으로 표출하는 소시오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 편집증적 망상장애라는 진단까지 들어 있다. 특히 트럼프의 나르시시즘은 미국정신의학회가 규정한 ‘자기애성 인격장애(NPD)’에 해당한다는 평가(주디스 허먼 하버드대 의학대학원 교수)까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 등에 관세 폭탄을 예고하면서 글로벌 무역전쟁의 전운이 짙어졌다. 1930년대 대공황을 심화한 주범 중의 하나가 보호무역이다. 미국은 당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해 2만 개가 넘는 수입품 관세를 대폭 올렸고, 이는 각국의 보복 조치를 불렀다. 결국 세계 경제가 모두 쪼그라들었다. 대공황이 다시 올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유럽연합(EU)과 중국의 보복, 미국의 재보복이 이어지는 상황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엔 재앙이다. 경제학원론에도 나오는 무역의 이득을 강조하면서 미국 내부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을 비판하는 합리적인 목소리가 나온다지만 트럼프가 얼마나 귀 기울일지 걱정이다. 트럼프의 정신 건강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고민거리가 됐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