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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반도 비핵화 분수령 … 김정은 ‘마지막 기회’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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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특별사절단 5명이 어제 방북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접견하고 만찬을 함께했다. 우리 정부의 특사단이 북한 땅을 밟기는 11년 만이고, 김 위원장을 직접 대면하기는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2011년 권좌에 오른 이후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2015년 10월), 사우바도르 발데스 메사 쿠바 국가평의회 부의장(2016년 7월) 등 중국·쿠바·시리아 사절단을 면담한 게 고작이었다. ‘은둔의 권력자’로 지내온 김 위원장이 대북 특사단을 만나면서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제외교 무대의 전면에 직접 등장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특사단의 방북은 공식적으론 김 위원장의 김여정 특사 파견에 대한 답방 형식을 띠고 있지만, 단순한 의례적 답방의 성격을 뛰어넘는다. 남북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살린 대화 모드를 북·미 대화로 연결시킨 뒤 한반도 비핵화라는 궁극의 목표로 가는 모멘텀을 살려 나가는 임무를 띠고 있다.

특사단, 어제 평양 도착해 김정은과 만찬 #비핵화 언급 시 북·미 대화 진일보 가능성 #빈손 귀국 시 북·미 중재외교 동력 상실

수석특사인 정 안보실장은 방북 직전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한 브리핑에서 ‘비핵화’를 의제로 공식화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확고한 뜻과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겠다”면서 김 위원장에게 직접 비핵화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사단은 김 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의 친서도 전달했다. ‘핵 동결이 대화의 입구이며 완전한 핵 폐기가 출구’라는 2단계 북핵 해법이 담겼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특사단 방북 기간 중 핵·미사일 도발을 상당 기간 중단하겠다는 뜻을 직접 밝히면서 비핵화 대화에 나설 의향을 보일 경우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

반면 특사단이 ‘빈손’으로 귀국하게 된다면 상황은 정반대로 달라질 게 분명하다. 중재할 내용이 없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 간 중매 외교는 벽에 부닥치게 될 것이고, 어렵게 물꼬를 튼 남북대화의 흐름까지 끊길 우려가 크다.

국제 외교무대 위에 오른 김 위원장은 자신의 선택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비핵화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남북대화 국면을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를 위한 노림수 정도로 인식한다면 상황은 더욱 꼬이고 악화할 뿐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문 대통령의 ‘운전자론’ 구상도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한반도 위기 상황이 재연된다면 ‘코피 터뜨리기’ 등 미국의 강경 분위기를 고려할 때 무슨 일이 기다릴지 종잡기조차 어렵다. 김 위원장의 입장에선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정상적인 트랙으로 한반도 문제를 옮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특사단과의 담판에 한반도의 운명이 달려 있음을 김 위원장이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