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미분양 5만 가구 7년 새 최대 … 올해 또 20만 가구 분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역 경제 침체와 주택 공급 과잉을 겪고 있는 경남 거제시의 한 아파트 단지 공사 현장. [중앙포토]

지역 경제 침체와 주택 공급 과잉을 겪고 있는 경남 거제시의 한 아파트 단지 공사 현장. [중앙포토]

오는 5월 입주를 시작하는 경남 거제시 A 아파트. 대형 건설사가 짓는 1000가구 넘는 대단지라 2015년 5월 분양 당시 4.8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재 이 아파트의 계약률은 70%대에 그친다. 가격도 약세다. 전용면적 84㎡ 분양권이 지난달 2억3000만원대에 팔렸다. 인근 D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분양가보다 5000만원 낮은 가격에 매물이 나온다”며 “입주가 시작되면 빈집이 많이 생길 텐데 거래가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역경제 불황 … 창원·거제 등 많아 #‘악성’ 준공 후 미분양도 94% 증가 #미분양 감소하는 수도권과 대조적 #정부 “위험수준 아니다 … 일단 관망”

지방 부동산 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미분양 주택이 쌓이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주택 구매 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어서다. 광역시보다는 입지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소도시에서 두드러진다. 그런데도 신규 분양물량은 오히려 느는 추세다.

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지방의 미분양 주택은 4만9256가구로 1년 전보다 22% 늘었다. 2011년 3월 5만483가구를 기록한 이후 7년여 만에 최대다. 지난해 1월 1만8938가구에서 올해 1월 9848가구로 미분양이 절반가량 줄어든 수도권과 대조적이다. 경남(1만3227가구)과 충남(1만1352가구), 경북(7806가구) 순으로 많았다.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9546가구로, 1년 전보다 94% 늘었다. ‘미분양 관리지역’도 느는 추세다. 미분양 관리지역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미분양 위험에 따른 주택 공급량을 관리하려고 매달 선정한다. 총 28곳 중 82%(23곳)가 지방이다. 지난달 28일엔 대전 동구와 울산 남구, 경북 안동, 경남 진주, 전남 무안군 등 5곳이 추가 지정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방에 미분양이 쌓이는 건 지역 경제 침체와 공급 과잉 때문이란 분석이다. 시·군·구별 미분양 상위 5위 지역만 봐도 알 수 있다. 창원(5663가구)과 거제(1745가구)는 조선업 불황, 포항(2146가구)은 지진 여파로 지역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천안(4282가구)과 청주(2013가구)는 ‘공급 과잉’에 신음 중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연구위원은 “지방은 지역 경제가 위축돼 구매력이 감소한 상태에서 공급이 쏟아져 미분양이 느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말했다. HUG가 집계한 지난해 4분기 민간 아파트 초기(분양 후 3~6개월) 계약률을 보면, 5대 광역시와 세종시는 87.9%로 전 분기보다 6%포인트 내렸고, 그 외 지방 중소도시는 74.7%에서 55.8%로 20%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김세원 내외주건 이사는 “웃돈을 기대하기 힘들어지자 아파트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광역시보다 중소도시에서 빈번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택 공급은 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지방에서 분양 예정인 아파트는 모두 20만여 가구로, 지난해보다 28.3% 많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올해 나오는 아파트는 분양 경기가 좋았던 지난 2~3년 전 건설사들이 시작한 사업”이라며 “건설사 입장에선 토지 매입 등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아 분양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국토부는 최근 지방 주택시장 침체 해소를 위해 청약 자격을 완화하는 내용의 ‘청약위축지역’ 지정을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 계획은 없는 상황이다. 김영국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위축지역으로 지정하면 집값 하락을 입증하는 ‘낙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할 것”이라며 "당분간은 시장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