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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국채 매입 중단” EU “할리데이비슨 보복 관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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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트럼프 대통령이 1일 백악관에서 철강사 대표들과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안에 대해 논의한 뒤 대표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1일 백악관에서 철강사 대표들과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안에 대해 논의한 뒤 대표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통상 전문가인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확신범적 보호무역주의자’라고 정의한다. 자유무역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무역적자를 악화시키며, 미국인에게 주는 혜택은 없다고 확신한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관세 폭탄에 맞불 추진

이런 자유무역에 대한 불신이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년 차인 올해 들어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해외산 제품에 무차별 ‘관세 폭탄’을 매기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이익이 되는 이런 정책에는 피해를 보는 상대국이 있다.

자연히 반발을 불러온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발(發) 무역전쟁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최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회원국 간의 무역전쟁 가능성이 위험 수준”이라고 경고한 것도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를 우려한 것이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미국이 과거 세계 무역에 대해 품었던 ‘건설적인 기상’이 그립다”며 미국의 보호무역 행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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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가 시작되는 첫 주였던 지난 1월 23일(현지시간)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최대 50%의 관세를 매기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건 2002년 이후 16년 만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 수입이 미 안보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한국과 중국 등 12개국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53%의 관세를 물리는 방안이 들어 있었다. 모든 철강 수입 제품에 24%의 일률 관세를 부과하거나, 모든 철강 수입을 지난해 수준의 63%로 제한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일률 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다. 이날 미국 내 철강·알루미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대신 상무부 안보다 높은 25%의 세율을 매기기로 했다. 자국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안보를 명분으로 관세폭탄(또는 수입량 할당)이라는 보호무역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코노미스트 출신이자 시카고 카운슬 국제문제협의회(CCGA) 무역 전문가인 필 레비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에 대해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문을 연 것”이라며 “글로벌 무역전쟁의 포문을 연 셈”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세계 무역질서를 깨뜨렸다”고 전했다.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건 미국의 주 타깃이 되는 중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8일 의회에 제출한 ‘2018 무역정책 어젠다·2017 연례 보고서’에서 “미국은 중국의 국가주도 경제모델이 국제 경쟁력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한 고강도 무역 압박 방침을 재차 천명한 셈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U, 미국산 위스키도 제재 검토

중국 당국은 무역확장법 보고서가 공개된 다음 날 “보고서가 근거가 없고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최종 결정이 중국의 국익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관영 매체인 인민일보와 환구시보 등은 “미국 국채 매입 중단 카드, 중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덤핑 조사 개시와 벌금 부과 등의 맞불 대응을 펼쳐야 한다”고 구체적인 ‘보복’ 방법까지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 간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은 ‘태풍의 눈’이다. 지난해 8월부터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현황을 조사하고 있는 미국은 스페셜 301조 발동을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G2(주요 2개국·미국과 중국) 간 무역 대전이 발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전선은 G2뿐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무역확장법 보고서와 관련해 “미국의 무역 제한조치로 인해 수출이 영향을 받을 경우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EU가 보복 조치로 미국산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및 버번 위스키에 대한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다소 나아졌지만 세계 경제가 침체기를 겪으면서 자국 시장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불을 지폈다”고 말했다.

NYT “트럼프가 무역질서 깨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밖뿐 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정책에 대한 반발 기조가 있긴 하지만 자유무역을 기피하는 트럼프의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분석에서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국내외 기업 유치와 보호무역 조치를 통한 자국 산업 보호가 성과를 내고, 지지층으로부터도 호응을 얻고 있다고 트럼프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글로벌 무역의 방향은 당분간 트럼프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최대 라이벌인 중국 역시 미국의 일련의 조치에 대해 반발하지만 당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다. 중국은 최근 미국산 닭고기에 부과해온 반덤핑관세를 최근 8년 만에 철회하는 등 미국에 대한 대응 경고와 함께 유화 제스처도 동시에 보내고 있다. 게다가 WTO와 같은 다자 무역체제도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앞에서 힘을 잃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장기 집권을 꾀하는 등 중국의 최근 국내 여건상 당장 미국과 통상 문제로 ‘강 대 강’ 대결을 벌이진 않을 것”이라며 “WTO가 무력화한 상황에서 당분간 트럼프가 독주하며 세계 통상질서가 요동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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