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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잡기 어렵다고 합승하라는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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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중앙SUNDAY 차장

박현영 중앙SUNDAY 차장

내가 어렸을 때 택시 합승은 합법이었다. 그래서 택시 타기는 숨바꼭질 퍼포먼스였다. 엄마 지시에 따라 우리 삼남매는 가로수 뒤에 숨곤 했다. 엄마는 혼자인 양 택시를 잡았고, 한 대가 멈춰 서면 우르르 뛰어나가 차에 올라탔다. 피식 웃고 마는 기사도 있었지만, 대부분 싫은 내색을 했다. 합승을 못 해 수입이 줄어드니 어찌 보면 그럴 만했다. 우리는 숨지 않으면 택시를 탈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억이 떠오른 건 국토교통부가 택시 합승 허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36년 전 폐지한 제도를 꺼내 든 이유는 심야 승차난 해소다. 스마트폰 앱 기술이 발전해 승객별 요금을 계산할 수 있으니 ‘요금 시비’라는 장애물도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시민 편의는 무시하고 택시업계만 봐주려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과 온라인 여론은 ‘왜 택시업계에 끌려다니냐’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심야 승차난 해소가 목적이라면 차량 공유 서비스 허용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카풀앱 확대도 가능하다. 차량 공유는 글로벌 시장에선 이미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우버·리프트, 싱가포르의 그랩, 중국의 디디추싱 같은 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나는 해외에 나가면 택시 대신 이런 서비스를 이용한다. 가격이 싸고 편리해서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시내까지 약 20㎞를 이동했는데 우버는 27달러(약 2만9000원), 택시는 52달러(약 5만6000원)였다. 사전 등록한 신용카드로 요금이 결제되고, 영수증은 e메일로 받는다. 모든 게 기록되기 때문에 불안감도 덜하다. 싱가포르 친구는 "기사 딸린 차 한 대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차량 공유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우버는 지난해 세계 600개 도시에서 약 40억 회 운행했다. 국내에서는 2013년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1년 만에 서울시가 불법으로 규정해 이용할 수 없다. 택시 영업행위를 침해하고, 검증되지 않은 차량 사용이 위험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해외에서도 기사의 장시간 노동, 범죄 피해, 규제 회피는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국내 택시 제도의 문제점, 합승 부활이 불러올 파급도 이에 못지않다. 모르는 사람과 목적지를 공유하고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빠른 이동이라는 본연의 기능도 사라진다. 혼자가 아닌 승객은 홀대받을 게 뻔하다. 1980년대로의 회귀이다.

차량 공유라는 신기술 등장으로 세계 교통업계는 ‘파괴적 혁신’을 겪고 있다. 기존 산업은 재편될 수밖에 없다. 그걸 외면하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다. GM·도요타 등 자동차 제조업체, 소니 같은 전자업체가 차량 공유 서비스에 뛰어드는 시대다. 국토부의 시각이 너무 좁은 것 같아 안타깝다.

박현영 중앙SUNDAY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