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리아 화학무기 공장에 자재 50t 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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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보고서 "북한이 시리아 화학무기 제조 관여"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 의혹을 조사하기로 했다. 시리아 정권이 이달 들어 반군 지역인 동(東) 구타에서 염소가스 공격을 실시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어서다. [EPA=연합뉴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 의혹을 조사하기로 했다. 시리아 정권이 이달 들어 반군 지역인 동(東) 구타에서 염소가스 공격을 실시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어서다. [EPA=연합뉴스]

북한이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제조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다.

2016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다섯 차례 보내 #제조시설 주변서 北 기술자 활동 포착돼 #양국 간 검은 거래 지속…北 외화벌이 수단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2016∼17년 다섯 차례에 걸쳐 시리아에 화학무기 공장을 건설할 수 있는 자재 50t을 운반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소속 8명의 전문가가 작성한 200페이지 이상 분량의 보고서를 인용했다.

WSJ은 바사르 알아사드 정권이 북한에 지급한 금액이 연간 수백억 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시리아 정부군이 최근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반군 장악 지역에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보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자료여서 주목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을 피해 시리아에 화학무기 제조와 관련한 물자와 인력을 보내고 핵ㆍ미사일 개발을 위한 외화벌이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가스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동 구타 지역의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가스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동 구타 지역의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도 같은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선편으로 보낸 여러 물자가 화학무기 제조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북한이 공급한 내산성(耐酸性) 타일과 밸브, 온도계 등이 이용됐다”며 “북한 미사일 기술자들이 시리아 내 화학무기 및 미사일 생산 시설에서 활동 중인 것도 포착됐다”고 전했다. 내산성 타일은 일반적으로 화학 공장 내부 벽면에 사용된다.

지난해 1월 내산성 타일을 실은 두 척의 선박이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중 해상에서 유엔 회원국에 의해 차단되면서 적발됐다.

보고서는 이같은 거래를 통해 시리아가 북한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현금을 제공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가중시켰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북한은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적어도 40차례 이상 시리아에 선박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탄도미사일 부품과 재료들이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이 2011년 발발해 계속 진행 중인 만큼 시리아 정부군의 민간인 살상에 북한이 조력했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은 2013년 반군 지역인 구타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1400여명을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해 4월에도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 마을인 칸세이쿤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83명의 사망자와 300여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시리아 이들리브 남부의 한 도시에서 정부군의 화학무기 추정 공격에 부상한 주민들이 바닥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4월 시리아 이들리브 남부의 한 도시에서 정부군의 화학무기 추정 공격에 부상한 주민들이 바닥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시리아 간 검은 거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북한은 1970년대 초부터 시리아에 각종 무기를 수출했다. 이스라엘과 중동전 당시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시리아 공군과 비행임무를 같이 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사정거리 500㎞인 스커드-C 탄도미사일을 시리아에 넘겼다.

시리아에 핵무기의 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도와주다가 2007년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는 북한군이 시리아 정부군을 돕기 위해 내전에 참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화학무기와 관련해선 1990년대부터 시리아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7년에는 북한과 이란 기술자가 시리아를 돕다가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폭발한 탄두에는 사린가스와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VX가스가 가득 들어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시리아는 북한의 지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내전이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도 2015년 양측 인사들과 군 관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다마스쿠스에 북한 김일성 주석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개막하고 공원을 열었다고 NYT는 설명했다.

NYT는 이번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작성자들은 물론 보고서를 열람한 국제기구 관계자와 미국의 관리들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8명의 전문가는 대량살상무기, 해상운송, 관세 등의 분야에서 활동중인 인사들로, 국적도 다양하다. 2010년 이후로 유엔 안보리가 정한 제재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매년 대북제재위원회 명의로 보고서를 작성해왔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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