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금메달 따낸 이승훈, 뒤에서 도운 막내 정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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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승훈이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 경기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정재원과 태극기를 휘날리며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대한민국 이승훈이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 경기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정재원과 태극기를 휘날리며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빙속 장거리 간판' 이승훈(30·대한항공)이 8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승훈의 위업 뒤엔 13살 어린 후배 정재원(17·동북고)의 도움이 있었다.

이승훈은 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1위(7분43초97)로 골인했다. 이승훈은 평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된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팀추월에서도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은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올림픽 메달(금 2, 은 3)을 목에 걸었다.

매스스타트는 쇼트트랙처럼 여러 명의 선수가 함께 지정된 코스 없이 400m 트랙 16바퀴를 함께 달리는 경기다. 줄곧 후미에서 달리던 이승훈은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두 바퀴를 남기고 스벤 크라머르(네덜란드)가 뛰쳐나갔을 때도 이승훈은 꿈쩍하지 않았다. 바트 스윙스(벨기에)가 한 바퀴 정도를 남기고 뛰쳐나갈 때야 뒤로 따라붙었다. 이승훈은 힘있는 스퍼트로 스윙스까지 제치고 가장 먼저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이승훈은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이승훈이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 경기에서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이승훈은 이날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8.2.24/뉴스1

대한민국 이승훈이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 경기에서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이승훈은 이날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8.2.24/뉴스1

매스스타트는 종목 특성상 동료 간의 '협력'과 '희생'이 중요하다. 앞에서 바람막이 역할을 하거나 페이스를 조절하는 선수는 메달을 따기 어렵다. 정재원은 먼저 선두로 치고나간 선수들과 거리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앞장섰다. 덕분에 이승훈을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정재원은 마지막 두 바퀴를 남기고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허리를 폈다. 그리고 8위로 골인했다. 그는 "승훈 형이 치고 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구나'라고 생각해 힘이 빠졌다"고 했다. 사실 한국만 쓰는 전술은 아니다. 크라머르도 자신을 희생해 동료 코헨 페르베이(네덜란드)의 동메달을 도운 뒤 결승에선 제일 마지막(16위)로 돌았다. 크라머르도 "페르베이를 위해 뛰었다"고 했다.

이승훈은 천천히 링크를 도는 정재원을 향해 다가간 뒤 끌어안았다. 그리고 태극기를 들고 둘이 함께 경기장을 돌았다. 정재원을 관중석 쪽에 더 가깝게 보이도록 세운 뒤 손을 들어줬다. 둘이 함께 만든 금메달이란 의미였다. 이승훈은 정재원에게 자전거를 선물할 계획이다. 정재원은 "제가 아직 사이클이 없다. 승훈이 형에게 말하긴 했는데 '엄마하한테 사달려고 한다. 마음만 받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웃었다. 그러나 이승훈은 "이미 사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재원이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결승전에서 질주를 하고 있다. 이날 이승훈은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8.2.24/뉴스1

대한민국 정재원이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결승전에서 질주를 하고 있다. 이날 이승훈은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8.2.24/뉴스1

금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은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감격이 밀려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동안 많은 훈련 과정도 생각나고, 너무 간절히 원했던 메달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승훈은 2010 밴쿠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에서 넘어진 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태극마크를 단 그는 1만m 금메달, 5000m 은메달을 따내는 사고를 쳤다. 하지만 2014 소치 올림픽에서는 1만m 4위에 머물렀다.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을 이겨내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쇼트트랙 출신 이승훈에게 유리한 매스스타트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이승훈은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4년 뒤를 기약했다.

이승훈의 메달 뒤엔 '집중'과 '선택'이란 밑바탕이 있었다. 이승훈은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체대에서 쇼트트랙 훈련에 집중했다. 다른 장거리 종목보다는 매스스타트 메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재원도 훈련 파트너가 돼 이승훈을 도왔다. 노선영이 빙상연맹의 행정착오로 대표팀에서 빠진 뒤 "지난해 12월 월드컵 이후 팀추월 훈련을 안 했다. 이승훈·정재원·김보름 3명이 따로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한 그 훈련이다. 당시엔 1500m 출전권이 없어 팀 추월에만 출전할 예정이었던 노선영은 불만이 생겼고, 이게 화근이 돼 선수단 전체 분위기가 나빠졌다. 여자 팀 추월 대표팀 사건의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이승훈은 노선영의 발언 직후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메달 획득 후 공식 기자회견에선 "다른 선수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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