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노후준비 5년 설계] 열심히 일한 당신 ‘은퇴 자축금’으로 후반전 준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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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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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대부분 쓸쓸하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회사 문을 나서는 은퇴자는 별로 없다. 은퇴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도 수고했다며 위로하는 정도에 그친다. 은퇴자에게 박수를 치며 이젠 쉬게 돼 부럽다고 했다간 욕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갈 데가 사라지면 그게 바로 은퇴가 되는 게 직장인의 삶이다. 평생을 바쳐 몸이 부서져라 뛰던 일터를 나갈 수 없게 됐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넘긴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주위에서 은퇴를 축하해 줄 수 없는 현실이라면 스스로를 자축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려면 순전히 자신만을 위한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일종의 ‘은퇴 자축금’이다.

자축이 아니라 기나긴 은퇴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다는 의미에서도 그런 돈의 존재는 유효하다. 이는 퇴직금이나 연금 이런 개념과는 다르다. 퇴직금과 연금은 ‘내 돈’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퇴직금 일부를 쓰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아내와 가족들이 쳐다보는 돈이라 아무래도 제약이 따른다.

은퇴 전문가들은 은퇴 후 어느 정도 공백기를 갖는 게 좋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후 준비가 부실하기 때문에 은퇴 후 바로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서두르는 일일수록 그르치게 돼 있다.

인생 1막이 끝난 뒤 중간에 쉴 틈 없이 시작한 2막이 잘 돌아갈 리 만무하다. 인생 2막으로 넘어가기 전 1막을 정리하며 휴식을 즐길 여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선진국에선 우리 돈으로 5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 모아놓고 최소 1년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미래 계획을 세우며 준비하는 은퇴자가 많다고 한다.

은퇴 자축금은 말 그대로 은퇴를 자축하기 위해 마련하는 돈이다. 직장생활을 끝낸 자신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완주를 격려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금이다. 가정을 위해 자존심을 뭉개고, 스스로에게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은퇴자는 자축금으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거나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은퇴의 시간을 깊이 호흡할 여유를 갖는다.

이 시간이 일종의 은퇴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 또 자축금은 인생의 전반전을 정리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은퇴 연착륙을 유도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서명수 객원기자 seo.myo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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