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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생각해보는 축제의 참 의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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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호 21면

싱가포르 작가 한 사이포의 ‘블랙 포레스트’(2018)

싱가포르 작가 한 사이포의 ‘블랙 포레스트’(2018)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25일 막을 내리지만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곧 평창동계패럴림픽(3월 9~18일)이 이어지는데다 지구촌 최대 겨울 축제를 위해 마련한 문화행사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강원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다채로운 문화행사 중 강릉에서 개막한 강원국제비엔날레2018(2월 3일~3월 18일)와 영국 작가 아시프 칸(Asif Khan)이 임시 미술관 형태로 평창에 세운 현대자동차 파빌리온(2월 9~25일, 3월 9~18일), 또 다른 영국 작가 리처드 우즈(Richard Woods)와의 협업으로 정선에 새로 문을 연 웰니스 리조트 파크로쉬(PARK ROCHE)를 다녀왔다. [편집자]

강원국제비엔날레2018을 가다


시리아 작가 압달라 알 오마리의 ‘더 보트’(2017)

시리아 작가 압달라 알 오마리의 ‘더 보트’(2017)

쎄다.

강원국제비엔날레2018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렇다. 주제가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이다. 23개국 58명/팀이 전쟁·테러·살인·폭력·환경오염·기아·난민·성소수자 등에 대한 생각을 예술의 이름으로 110여 점 펼쳐놓았다.

전 세계적 축제를 개최해놓은 마당에 이게 무슨 생뚱맞고 불편한 접근이냐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이에 대해 홍경한 예술총감독은 “사회적 악, 보편적 악, 평범한 악이 우리 인류 공동체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빚어지고 있음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 일갈한다. “화합과 상생, 평등과 평화, 인본주의에 입각한 ‘올림픽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현상을 관통하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동시대 인간 생태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고의적·의식적으로 예술의 맥락에서 풀어냄으로써 인류가 나아갈 방향 혹은 길은 무엇인지 자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화려한 축제의 대척점에는 어둡고 무섭고 슬픈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얘기다.


괴이하고 불편한 체험 … 누군가에겐 현실  

콜롬비아 작가 라파엘 코메즈 바로스의 ‘하우스 테이큰’(2008~2017)

콜롬비아 작가 라파엘 코메즈 바로스의 ‘하우스 테이큰’(2008~2017)

모잠비크 작가 곤살로 마분다의 ‘더 스론 오브 더 샤이닝 드림’(2016)

모잠비크 작가 곤살로 마분다의 ‘더 스론 오브 더 샤이닝 드림’(2016)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컨벤션홀이 전시장 A, 주차장 부지에 컨테이너로 마련된 가건물이 전시장 B다. 우선 전시장 A로 들어가면 벽면과 천장에 새카맣게 붙어있는 커다란 개미떼가 관람객을 맞는다. 그런데 2일 프레스 프리뷰에 참석한 콜롬비아 작가 라파엘 코메즈 바로스는 “개미가 아니라 두 개의 해골을 형상화해 붙여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작지만 어디에나 있는 곤충인 개미를 확대, 이민자와 난민의 문제가 세계 보편의 문제가 됐음을 부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일본·이탈리아 3개국 연합팀인 ‘돈 팔로우 더 윈드’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출입통제구역이 된 방사능 오염 지역 인근을 촬영한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다. 후쿠시마 현에서 나오는 전통공예품 오키가리-코보시를 형상화한 탈은 360도 영상을 볼 수 있는 헤드셋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레바논 작가 아크람 자타리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아랍인들을 찍은 사진으로 작업한 설치물을 볼 수 있다. 오는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초대전을 앞두고 강릉에서 먼저 보따리를 풀었다.

호주 작가 하딤 알리의 ‘프래그먼트 프롬 언타이틀드 21’(2017)

호주 작가 하딤 알리의 ‘프래그먼트 프롬 언타이틀드 21’(2017)

호주의 하딤 알리는 악마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태피스트리 작업을 내놨다. 홍 예술감독은 “그림 속 악마는 악한 존재가 아니라 주류에 끼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주변부에서 악마가 된 사람들을 상징한다”며 “유럽으로 가려다 바닷속에 수장된 난민들의 사연을 카펫에 꿰매고 색칠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의 애니메이션 ‘카바레 십자군’(2012)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의 애니메이션 ‘카바레 십자군’(2012)

이집트 작가 와일 샤키의 ‘카바레 십자군 II’(2012)는 58분짜리 뮤지컬 인형 애니메이션인데,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유리와 도자기로 정교하게 만든 인형들이 실크와 벨벳으로 만든 코스튬 차림으로 새로운 시각의 역사를 들려준다. 한글 자막이 있는데 가끔 해석이 안 나오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쉽다.

3층은 입구부터 강렬하다. 한국 작가 김소장실험실의 ‘새로운 공-존 시스템; 혼종실험’(2016)은 병원에서 쓰는 링거팩을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작품인데, 팩 속의 붉고 푸른 액체가 괴기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 옆에 마련된 한효석 작가의 코너는 진행요원이 19세 이하 미성년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인간을 피부색으로 차별한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통렬한 비판이 드러나는데, 아무 생각없이 커튼을 젖히고 들어갔다가는 어른도 놀라는 수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스위스 작가 토마스 허쉬혼의 작품도 시각적 충격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전쟁이나 테러 등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 화려한 잡지 속 모델들을 오려붙인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긴 하는데, 대상이 시체가 아니라 잡지 속 인물이다. 이 같은 그의 ‘픽셀 콜라주’는 보아야 할 것과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하는 ‘권력’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 작가 심승욱의 ‘안정화된 불안-8개의 이야기가 있는 무대’(2018)

한국 작가 심승욱의 ‘안정화된 불안-8개의 이야기가 있는 무대’(2018)

컨테이너로 꾸민 전시장 B에 들어서니 거칠고 투박한 공간감이 비로소 비엔날레답다. 맨 앞에서 관람객을 맞는 심승욱 작가의 ‘안정화된 불안-8개의 이야기가 있는 무대’(2018)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팔각의 공간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보통 철조망이 아니라 영어 문장으로 되어 있다. 굿네이버스와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수집한 8편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최수진이 작품 낭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추운 날씨에 하얀 블라우스 차림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맨발로 휘젓는 춤사위에 슬픈 이야기들이 시리게 겹쳐졌다.

한국 작가 신제현의 ‘해피밀’(2018)

한국 작가 신제현의 ‘해피밀’(2018)

두 번째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작가 신제현이었다. 그의 ‘해피밀’(2018)은 식탁과 의자가 일체형으로 제작된 구조물을 공중에 띄워놓고 4명의 퍼포머가 15분간 각자의 전통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지상 5m 높이에서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작가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난민들의 불안감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일 작가 케테 벤젤은 동물을 공산품처럼 다루는 현실을 고발한다. 베를린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주일 동안 200마리 분의 가금류 뼈를 수거한 작가는 이것으로 인간의 몸을 옥죄는 코르셋을 만들었다. 삶과 죽음, 사람과 동물, 유기체의 존재론과 기계론적 묵시론이 절묘하게 섞여있다.

아프가니스탄 작가 마수드 하사니의 ‘지뢰 카폰’(2011)

아프가니스탄 작가 마수드 하사니의 ‘지뢰 카폰’(2011)

바람의 힘으로 돌아다니며 지뢰를 제거하는 장치 ‘지뢰 카폰’(2011)을 만든 아프가니스탄 작가 마수드 하사니, AK47 소총과 로켓 발사대의 부속품으로 사람의 마스크와 일상용품을 만들어낸 모잠비크 작가 곤살로 마분다, 불타버린 숲의 흔적을 형상화한 ‘블랙 포레스트’(2018)를 보여준 싱가포르 작가 한 사이포 등도 눈에 띄는 작가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광부 사진가 전제훈의 작품존이었다. 검은 장화와 검정 석탄이 마주보며 도열해 있는 공간 속으로 플래시를 들고 들어가 작가가 담아낸 갱도 안 광부들의 모습들을 하나씩 비춰보자 갑자기 먹먹해졌다. ‘막장’에서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한국 작가 전제훈의 ‘블랙 마스카라’(2017)

한국 작가 전제훈의 ‘블랙 마스카라’(2017)

▶무료. 하루 네 번(오전 11시·오후 1시·오후 3시·오후 5시) 있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문의 033-651-0784 

강릉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강원국제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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