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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다카기 자매의 감동, 정치의 무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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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일본 지사장

서승욱 일본 지사장

두 살 터울의 자매는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함께 했다. 스케이팅도, 취미인 힙합댄스도 늘 함께였다. 주 종목도 같았다. 언니는 키가 훨씬 크고 무엇이든 자기보다 뛰어났던 동생이 마냥 부러웠다.

올림픽 출전도 동생이 먼저였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대표로 뽑힌 중학교 3학년 동생을 고등학생 언니는 관중석에서 응원했다. 언니는 TV 인터뷰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한 무대에서 겨루는 동생이 솔직히 부럽다”고 말했다.

학교 스케이트 코치에게도 “너무 부럽다. 무엇이든 나보다 잘하는 동생을 언젠가는 따라잡을 거다”고 털어놓았다. 코치는 “그런 질투심과 욕심이 그를 성장시켰다”고 회고했다.

언니의 말대로 4년 뒤엔 위치가 바뀌었다. 국가대표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다카기~’란 이름이 호명됐다. 모두가 동생 ‘미호’의 이름을 떠올렸지만 결론은 언니 ‘나나’였다. 앞으로 불려 나가는 언니의 모습을 동생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켜봤다. 동생은 “분하다기보다 한심하고 비참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언니가 2014년 소치 올림픽 대표로 뛰는 장면을 동생은 고향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TV로 지켜봤다.

친하기만 했던 자매는 어느덧 라이벌이 됐다. 그리고 이 라이벌은 4년 뒤 팀 동료로 만났다. “함께 금메달을 따 부모님께 하나씩 걸어드리자”는 꿈같은 일은 마침내 현실이 됐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에서 금메달을 딴 일본의 다카기 나나(高木菜那·26)-미호(美帆·24) 자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한국 여자 대표팀의 불화로 얼룩졌던 바로 그 종목이다. 일본에선 두 자매의 휴먼 스토리와 결승에 출전했던 세 선수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경기 장면이 연일 화제다. 동생 미호는 여자 1500m 은메달과 1000m 동메달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스타가 됐다.

역시 최고의 감동은 ‘사람’이며, 옆자리의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며, 1 더하기 1이 3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올림픽은 새삼 확인시켰다.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緒)의 금메달과 이상화의 은메달이 단순한 메달 두 개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 것도 함께 나눈 포옹과 눈물 덕분이었다.

때로는 경쟁하고 갈등하더라도, 같은 방향을 보며 달려온 사람들이 함께 열매를 맺을 때 최고의 감동이 폭발하는 것이다.

하물며 나라를 이끄는 일, 그것도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어가는 일은 오죽할까. 옆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엔 도통 관심이 없고, 생각이 다른 절반쯤의 사람들은 빼고 우리끼리만 달리는 게 속 편하다는 식이라면 그 경기의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서승욱 일본 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