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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니 피 맺힌채 "일 없슴다" 南 응원도···화제의 北스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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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15km 프리 경기에서 북한의 한춘경(왼쪽)과 박일철이 경기 후 믹스드 존을 나와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6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15km 프리 경기에서 북한의 한춘경(왼쪽)과 박일철이 경기 후 믹스드 존을 나와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국제 무대에서 베일에 쌓여있던 북한 스키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통해 큰 주목을 받았다. 성적은 신통찮았지만, 화제를 모을 만 한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북한이 겨울올림픽 스키 종목에 선수를 파견한 건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이후 26년만이었다. 지난달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으로 와일드카드를 통해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북한 선수는 모두 6명.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한춘경·박일철(이상 남자부)·이영금(여자부) 등과 알파인 스키의 최명광·강성일(이상 남자부)·김련향(여자부)이었다. 지난해 2월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을 포함해 국제 대회에 좀처럼 나서지 않았던 북한 스키 선수들의 평창올림픽 파견은 대회 전부터 관심을 받았다.

북한 강성일이 18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용평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남자 대회전 런1에서 질주를 하고 있다. [평창=뉴스1]

북한 강성일이 18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용평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남자 대회전 런1에서 질주를 하고 있다. [평창=뉴스1]

뚜껑을 열어보니 북한 스키의 경기력은 부진했다. 크로스컨트리 남자 15㎞ 프리스타일에 나섰던 한춘경과 박일철은 116명 중 각각 101위와 107위에 머물렀다. 남자 알파인스키 대회전에 나섰던 강성일과 최명광은 1·2차 시기를 완주한 75명 중 각각 74위와 75위에 그쳤다. 알파인스키 회전에서도 최명광이 43위, 강성일은 실격됐다. 여자 선수들도 알파인스키 회전에 출전한 김련향이 54명 중 최하위, 크로스컨트리 10km 프리스타일에 나섰던 이영금이 90명 중 89위에 머물렀다.

경기장에서 북한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봤던 지영하 한국 알파인스키대표팀 코치는 "북한 선수들의 장비가 비교적 새 것이더라. 아마 한국에서 관련 장비를 빌려 탄 것 같았다"면서 "선수들의 잠재성은 있었지만 전반적인 실력은 우리로 치면 청소년 수준 정도였다. 다양한 국제 대회 경험을 쌓는 게 필요해보였다"고 말했다. 북한 선수는 국제스키연맹(FIS)에 등록된 현역 선수가 알파인스키 16명, 크로스컨트리는 8명에 불과하다. 얇은 층에 국제 대회 경험 부족이 더해져 평창올림픽에선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15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여자 10km 프리 경기. 결승선을 통과한 북한 리영금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다 대회 관계자(선글라스에 비친 인물)의 셀카 요청에 미소로 응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5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여자 10km 프리 경기. 결승선을 통과한 북한 리영금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다 대회 관계자(선글라스에 비친 인물)의 셀카 요청에 미소로 응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그러나 경기력과 별개의 상황에선 주목받을 만 한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북한 선수들이 참가한 경기가 치러진 용평알파인경기장과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는 북한 응원단이 수십명 방문해 열띤 응원을 보냈다. 악조건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박수를 받은 선수도 있었다. 이영금은 경기 도중 코스 밖으로 미끄러져 다치는 상황을 맞았는데도 다시 일어서 끝까지 레이스를 펼치면서 꽉 들어찬 관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인터뷰 때 그의 앞니엔 피가 맺혀있었지만 그는 "일 없습니다(괜찮습니다)"고 말하고 훌훌 털고 일어났다.

11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15km 15km 스키애슬론 경기. 훈련을 위해 경기장을 찾은 북한 코치진이 뒤쳐진 채 홀로 달리는 한국 김은호 선수를 향해 소리쳐 응원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1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15km 15km 스키애슬론 경기. 훈련을 위해 경기장을 찾은 북한 코치진이 뒤쳐진 채 홀로 달리는 한국 김은호 선수를 향해 소리쳐 응원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훈훈한 장면도 포착됐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15km+15km 스키애슬론 경기에 뒤처진 채 달리던 한국의 김은호를 향해 북한 코치진 두 명이 응원을 보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를 모았다. 과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치적을 앞세워 '원수님의 사랑'만 언급하던 북한 선수들의 태도도 달랐다. 크로스컨트리의 한춘경은 "온 나라가 모여서 이렇게 경기를 하니 참 기쁘다. 앞으로 더 높은 경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더 많은 땀을 흘리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북한응원단이 18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용평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남자 대회전경기에서 北 강성일을 응원하고 있다. [평창=뉴스1]

북한응원단이 18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용평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남자 대회전경기에서 北 강성일을 응원하고 있다. [평창=뉴스1]

22일 알파인스키 회전에 출전해 1차 시기를 완주한 강성일은 같은 시기에 넘어져 실격된 이 종목 세계 1위 마르셀 히르셔(오스트리아)의 실격에 대해 "1등하는 선수들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강성일은 과거 국제 대회 출전 경험을 묻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2010년, 2012년 아시아 청소년 경기에 두 번 나가봤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과거 '원수님'만 강조하던 북한 선수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1일 마식령스키장 남북공동훈련에 참가한 선수들이 공동훈련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1일 마식령스키장 남북공동훈련에 참가한 선수들이 공동훈련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스키 종목은 평창올림픽 기간 남북한이 활발한 교류를 한 분야로 꼽힌다. 평창올림픽 개막 직전에는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1박2일 합동 훈련을 펼쳤다. 김남영 대한스키협회 부회장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남북간의 꾸준한 교류로 이어져서 서로 경기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교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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