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속도전에 정부는 지구전...정부의 전략과 카드는?

중앙일보

입력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왼쪽)이 22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간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과 굳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차관은 이날 GM 본사에서 방한한 배리 엥글 사장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고 GM사태 해법을 논의한다. 2018.2.22/뉴스1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왼쪽)이 22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간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과 굳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차관은 이날 GM 본사에서 방한한 배리 엥글 사장과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고 GM사태 해법을 논의한다. 2018.2.22/뉴스1

 전격적인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열흘 가까이 지나면서 제너럴모터스(GM)와 정부의 협상 전략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GM이 속도전과 여론전으로 공세를 가하는 데 반해 정부는 지구전으로 GM의 압박을 누그러뜨리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3월 한국GM실사 개시’ 발표로 GM의 ‘2월 데드라인’ 무력화 #휘몰아치기 전략에 휘말려 졸속 결정 않겠다는 뜻 #그러면서 지원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아...파국 막을 당근 #“GM의 4대 요구 중 신규투자 참여만 가능할 것” 분석도

GM의 행보는 빠르고 강하다.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이 자금 지원 요구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13일 기습적으로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발표를 했다. 한국 정부에는 전날 통보한 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당일 “중대 결정을 내릴 2월 말까지 자금 지원과 관련해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한다”고 발표하면서 이중의 압박을 가했다. 2월 말까지 자금 지원 결정을 하지 않으면 한국 시장 철수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한편으로는 15만개의 일자리를 볼모로 잡고 여론전을 통한 양동 작전도 병행했다. 배리 엥글 GM 사장이 20일 국회를 방문해 “한국에서 지속해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밝힌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배리 엥글 GM인터내셔널 사장(가운데)과 카허 카젬(오른쪽) 한국GM 사장이 20일 국회를 방문해 여야 원내지도부와 면담했다. 왼쪽부터 홍영표 국회 환노위원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왼쪽 넷째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배리 엥글 GM인터내셔널 사장(가운데)과 카허 카젬(오른쪽) 한국GM 사장이 20일 국회를 방문해 여야 원내지도부와 면담했다. 왼쪽부터 홍영표 국회 환노위원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왼쪽 넷째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GM 측 공세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지구전을 통한 속도 조절이다. 전날 금융당국이 한국GM에 대한 3월 초 실사 개시 방침을 발표한 건 GM의 ‘2월 데드라인’을 사실상 무력화한 조치다. 정부와 산은은 “한국GM에 대한 실사가 종료돼야 자금 지원 여부에 대한 협상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2일 “한국GM에 어떤 지원이 있더라도 정확한 실사가 선행돼 그들의 경영정상화 의지와 구체적인 계획을 확인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3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한국 정부 스케줄대로라면 5월이나 6월은 돼야 본격 협상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GM의 휘몰아치기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한국 정부도 여론전을 병행하고 있다. 경제 수장들이 “전제 조건이 충족되면 지원이 가능하다”는 뜻을 계속 내비치고 있는 건 GM의 한국 철수라는 파국을 방지하기 위한 ‘당근’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연일 “GM이 장기 경영개선안과 불투명한 회계 문제 해결책을 내놓으면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날 엥글 사장을 만난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과 이인호 산업부 차관도 같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차관 등이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한다는 전제하에 정부가 지원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정부 관계자들이 이날 GM의 요구 사항 중 산은의 신규 투자 참여만 가능하다는 뜻을 전달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GM이 지난달 정부와 산은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GM에 대한 대출금 27억 달러의 출자전환과 향후 10년간 28억 달러의 신규 투자 조건으로 네 가지 요구를 했다고 전했다. 신규투자와 출자전환에 대한 보유지분율(17.02%)만큼의 산은 참여, 한국GM 공장에 대한 담보 설정 허용, 외국인투자기업 지정을 통한 세제 지원이 그것이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 지엠(GM)이 오는 5월 한국 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하면서 전북도가 충격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21일 한국 GM 군산공장 근로자들이 공장밖으로 나오고 있다.김성태/2018.02.21.

미국의 글로벌 기업 지엠(GM)이 오는 5월 한국 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하면서 전북도가 충격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21일 한국 GM 군산공장 근로자들이 공장밖으로 나오고 있다.김성태/2018.02.21.

정부는 몇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직간접적으로 난색을 보인 상태다. 외투 기업 지정의 경우 신규 투자 기업에만 적용된다는 게 상식이라 한국GM은 대상이 아니라는 콘센서스가 형성된 상태다. 한국GM 공장에 대한 담보 설정에 대해서도 자칫하다가 GM의 먹튀만 도와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출자전환도 GM의 경영 실패 때문에 발생한 부실로 인해 검토되는 사안인 만큼 한국 정부가 책임을 나눠질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

다만 신규 투자는 GM이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한국 정부가 산은 대출 등의 형태로 참여해도 부담이 적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GM은 빠르고 강한 압박을 통해 고용 등 문제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에 있는 정부의 처지를 이용하려 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조급해하지 말고 장기적 측면에서 실익을 따져 지원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