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지면 탄핵 악몽도··· 트럼프는 일자리가 급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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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한국 경제 융단폭격하는 트럼프 속내는

지난 1월 31일 한국과 미국 협상단이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위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월 31일 한국과 미국 협상단이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위해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고위 관리가 미국 정부 관계자에 따졌다.
"한·미 FTA가 발효되기 직전인 2011년에 비해 한국의 전체수입은 20%이상 줄었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3%도 안 줄었다. FTA가 미국에 도움이 되고 있는 거다."
미 정부 관계자는 "당신이 잘못 알고 있다"고 응수했다 한다. 그럴 리 없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점심 내기'로 이어졌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직원들 시켜 통계를 뽑아보니 당신 말이 맞았다. 밥을 사겠다."

11월 중간선거 지지층 결집위해 안보취약한 한국 겨냥 #"논리적이건 포퓰리즘이건 뭐든지 한다"는 게 트럼프 #펜스 부통령 평창 참석 이후 '연속 폭탄', 불만 표출 분석도

이 뿐 아니다. 한국 통상 관리들은 "미 상무부나 무역대표부(USTR)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양국 간 호혜적 관계를 아무리 상세히 설명해도 '음, 그렇지만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상품)가 200억달러가 넘는 것 알고 있지?'란 반응이 돌아온다"고 털어놓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복잡한 분석이나 수치를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들에게 단순하게 입력되는 '무역적자 200억 달러'에 목을 메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의 리조트에서 열린 공화당 연방의원 연찬회에서 연설하며 청중을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의 리조트에서 열린 공화당 연방의원 연찬회에서 연설하며 청중을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에 대한 '세이프 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발동으로 시작해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방침 발표, 최근 철강에 대한 53% 관세 예고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파상공세가 심상치 않다. 단순히 중국을 겨냥한 압박에 한국이 유탄을 맞는 상황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전방위 통상압력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문화한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꺼내 든 만큼 이를 자동차·조선·반도체 등 한국의 핵심 산업으로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실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지난해부터 반도체에 대한 관련법 적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을 기다리는 차량이 늘어서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을 기다리는 차량이 늘어서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1차 원인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다. 하원 의원 전원과 상원 의원 3분의 1(33명)을 선출한다. 여기서 진다면 국정 동력을 상실해 3년 후(2020년 11월) 대선에서 연임이 힘들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탄핵에 직면할 수도 있다. 공화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면 더 이상 가뜩이나 마뜩잖은 트럼프의 보호막 역할을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더군다나 현재로선 과반 확보가 유동적이다.

트럼프로선 경제적 판단이건 정치적 판단이건, 논리적이건 포퓰리즘이건,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어떤 조치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에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함께 한·미 FTA는 유권자를 설득할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한미 FTA 체결 과정

한미 FTA 체결 과정

백악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달 초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이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40%를 기록한 것에 백악관은 매우 고무돼 있다"며 "감세와 일자리 증가 등 유권자의 '체감 경기' 호전을 노린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이 지지율 회복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분석 아래 향후 가용한 모든 '안'들이 트럼프 책상 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중간 선거 전까지 미국 내 일자리 증대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철강·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수입 규제가 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트럼프로선 '무역 불균형' 해소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선거의 필승 전략이란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또 북핵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미 간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후폭풍이 원인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한국산 세탁기·태양광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은 한국을 표적으로 삼은 정치적 판단이었다. 철강 폭탄 관세 방침도 "캐나다·일본 등 주요 동맹국을 모두 제외하고 굳이 한국만 포함한 이유는 명확하다"(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는 게 미국 내 분위기다. 최근 한·미의 외교 갈등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미 정부가 '수출 증가율, 해당국의 중국 철강 수입량, 품목의 특성 등을 고려했다'고 했는데 우리의 대미 철강 수출은 2014년 이후 4년 연속 감소했다는 점에서 이유가 명확치 않다"(산자부 관계자)는 한국 측 분석은 여전히 문제의 뿌리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열린 인프라 구축 관련 회의에서 한국, 중국 등에 대해 무역 불균형을 지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열린 인프라 구축 관련 회의에서 한국, 중국 등에 대해 무역 불균형을 지적하고 있다.

미 정부의 전직 고위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일본·한국과의 교역에서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들 국가의 일부는 '이른바 동맹(so-called allies)이지만 무역에선 동맹이 아니다'고 말하며 사실상 한국을 겨냥한 싯점(현지시간 지난 12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뒤 귀국한 직후에 나왔다. 이어 16일에 철강 관세 부과 방안이 나왔다. "가뜩이나 한국의 대북 접근이 불편하던 차에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이 있은 뒤 통상압박을 지렛대로 미국 주도의 대북 정책을 끌고 가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미FTA 2차 개정협상에 나선 한미 협상단이 지난 1월31일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한미FTA 2차 개정협상에 나선 한미 협상단이 지난 1월31일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경제 동맹관리'에 실패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북핵 문제에만 치우친 나머지 트럼프 행정부 경제 정책의 흐름이나 핵심 인사 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17일 방미 예정이던 백운규 산업부장관은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트럼프 경제팀이 분주했기 때문"(산업부)이란 공식 설명과 달리 "방미 기간 중 미국 측의 세이프 가드 조치 발표가 예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한국 정부는 장관이 스타일 구기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미국을 설득하고 접촉하는 노력을 펼쳤어야 한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한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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